세상의 중심이 될 각오 (사무엘하 17:1~29)

📖 사무엘하 17:1~29시즌II_구약사무엘하-2

설교 요약

세상의 중심, 주관적 중심과의 차이

세상의 중심이 된다는 말은 언뜻 은혜처럼 들릴 수 있지만, 철든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운 진실입니다. 자신의 미천함을 알기에 세상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십자가 복음의 생활화는 오히려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포함합니다. 이는 주관적 자기중심성이 아닌,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홍대용 선비가 지전설을 통해 중화사상을 반박하며 ‘누구나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말한 것은 자주적인 자기중심성이었지만, 성경이 말하는 세상의 중심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지점

세상의 객관적인 중심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과 통치가 이 땅에 내려오는 지점입니다. 즉, 세상의 중심점은 하나님의 통치가 흘러 들어오는 곳입니다. 압살롬이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왕궁을 점령하며 명실상부한 중심이 된 듯 보였지만, 실질적인 통치력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피난길에 오른 다윗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이는 선민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성경적 메시지이며, 신앙인들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피난 중에도 중심이었던 다윗

다윗은 자신을 ‘정처 없이 가는 떠돌이’로 정의하며 정치적, 사회적으로 압살롬이 중심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께 향해 있었습니다.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계략을 따랐다면 다윗은 속수무책이었겠지만, 하나님께서 압살롬의 마음을 움직여 후새의 계략을 선택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다윗이 손 하나 쓰지 않고도 주변의 모든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통치력 덕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전념과 통치력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조차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모든 것을 빼앗아 가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전념했습니다. 이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에게 마음의 지분을 허락했던 자신을 하나님 한 분만을 가지도록 씻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잃으면서도 하나님을 가지려 했기에, 아무런 사태 수습도 못 하고 떠돌이 신세였지만, 그의 육체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통치와 명령이 임하는 중심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 생활화와 하나님의 통치

십자가는 나의 죽음을 삶으로 바꾸고 죗값을 치르는 사건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은 세상에서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에 대해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하나님께서 당신만을 갖게 하시기 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갖게 하는 것이 십자가 생활화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이러한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하나님 갖는 일에 전념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통치의 중심점으로 삼으시고, 그 지점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세상의 중심이 될 각오

오늘날 세상은 혼란하고 급박한 비상사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 갖는 일에 전념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통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부담스럽지만, 하나님 통치의 중심이 될 각오를 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그 지점에서 주변을 살펴보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자기 중심적인 의식 수준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지요. 어린아이들, 철 없는 가장, 괴팍한 사장님, 몹쓸 독재자 등등. 그러나 조금만 철이 나서 자신의 마음씀씀이나 인격 됨 그리고 능력 등의 미천함을 알고 나면, 내가 어떤 곳에서든지 중심이 된다는 사실보다 더 부담스럽고 거북살 스러운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철든 사람의 경우,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으려면 각오를 해야 합니다. 주관적 자기 중심성이 아니라 실제로 세상의 중심이 될 각오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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