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상복(償福) 없으란 법 있나? (사무엘하 22:21~29)

📖 사무엘하 22:21~29시즌II_구약사무엘하-2

설교 요약

노벨상이나 템플턴상처럼 세상이 인정하는 큰 상은 우리에게 유토피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우리 역시 하나님이 주시는 상으로 여생을 채울 수 있는 길을 보여줍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템플턴상 수상금을 전액 북한 돕기에 기증하며 "평생 1분 동안 백만장자가 되어 봤습니다"라고 웃으셨던 것처럼, 우리는 물질적인 상이 아닌 다른 차원의 충만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상을 받는 마음 상태를 넘어, 이미 받은 것으로 인해 기뻐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도 이러한 '상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공의'와 '깨끗함'의 참된 의미

다윗은 사무엘하 22장 21절에서 "여호와께서 내 공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으니"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공의'와 '깨끗함'은 단순히 도덕적인 행위를 넘어섭니다. 22절의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함으로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라는 구절은 오해될 소지가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기에 악을 행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선행의 근본입니다.

세상의 '무가치한 홍수'에서 도망하라

우리가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기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 때문입니다. 가족, 이웃, 상황, 환경 등 세상의 모든 것은 '무가치한 것들의 홍수'이며 우리의 마음을 빠뜨리는 사망의 물결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에 비하면 금방 타버릴 숯불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쏟는 대신, 하나님께로 도망쳐야 합니다. 이 도망의 결과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마음의 거부감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이 곧 상

하나님의 법도에 대한 마음의 '친화력'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는 제1계명인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명령과 연결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만 머물러 있다면, 다른 계명들은 자연스럽게 지켜집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으로 짓는 죄까지 언급하신 것은, 마음이 하나님께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겁게 느끼는 것은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지 않다는 증거이며, 이웃 사랑이 안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보내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짐'이라는 최고의 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은 노벨상이나 템플턴상과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26절의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라는 말씀처럼, 하나님 자신을 보여주시는 것이 상입니다. '자비'는 마음이 하나님께 머무는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보내는 것은 내 마음의 공백 안으로 하나님을 흡입하는 행위이며, 이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짐'으로 이어집니다. 삼성이나 서울대에 받아들여지는 기쁨처럼,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은 새로운 나를 얻게 되는 가장 큰 상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템플턴상에 기뻐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받아들여짐의 기쁨'을 이미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생활화: 하나님께로 도망치는 삶

우리가 하나님께로 마음을 옮기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는 것입니다. 십자가 생활화는 복잡한 교리 공부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하나님께로 도망치는 삶입니다. 마치 나를 죽이려는 홍수로 여기며 도망칠 때, 육체로 행해야 할 일들이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날개를 단 것처럼 가벼워집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할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행동이 나오며, 그 결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상, 즉 하나님 자신과의 깊은 연합을 누리게 됩니다.

본문 도입부

노벨상과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이 있지요. 내게는 '유토피아'라는 단어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이 상을 둘 다 받은 사람이 세명이나 있답니다. 유년시절 보물찾기를 해도 변변한 상 받은 적이 없었던 나에게도 상이라는 것이 과연 주어질까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의 여생을 하나님이 주시는 상으로만 채우면서 살 수 있는 길을 눈앞에 펼쳐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도 이제 여생만큼은 상복 터진 삶을 살다 천국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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