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19:1-30) 나 살고 너 죽어라

📖 삿19:1-30시즌I_구약사사기-1

설교 요약

죄의 본질: 타락이 아닌 이미 악함

우리는 아담 이후 타락한 것이 아니라, 이미 엄청나게 타락했고 악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교양, 교육, 문화적 습관으로 통제될 뿐, 내면의 악함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 악함이 억제되지 않고 풀려 나올 때, 십자가의 보혈로 죄의 힘을 묶지 못하면 우리의 사랑은 결국 '나 살고 너 죽어라'가 됩니다.

십자가 없는 사랑: '나 살고 너 죽어라'의 발현

십자가를 통해 죄가 통제되고 무력화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사랑은 **'나 살고 너 죽어라'**라는 실체를 가집니다. 사사기 19장의 레위인 이야기는 이러한 비극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레위인이 첩을 다시 데려오는 과정에서, 불량배들의 요구에 자신의 첩을 내어줍니다. 이는 자기 생존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사랑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레위인의 행위: 죄악의 극단적 표현

레위인은 첩이 불량배들에게 능욕당해 죽자, 그 시체를 열두 토막 내어 12지파에게 보냅니다. 이는 하나님께 번제를 드려야 할 자가 자신의 첩의 시체를 훼손하는 극단적인 행위입니다. 이러한 일은 선민 공동체, 즉 구약의 교회 안에서도 일어났으며,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십자가가 잊혀질 때 유사한 죄악이 발현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아브라함의 순종: 자기를 죽여 말씀을 살림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 했던 사건은 레위인의 행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인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죽인 것입니다. 25년 만에 얻은 아들을 바치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게 하려고, 즉 하나님의 말씀을 죽이지 않으려고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곧 나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을 살리기 위해 나를 죽이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믿음의 본질: 이미 죽었음을 기억하는 것

우리는 이미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로마서 10:10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죽었음을 시인하는 것', 즉 죽은 자임을 선택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사실이 잊혀지면, 우리는 나 살기 위해 자식도, 남편도 죽이는 '나 살고 너 죽어라'의 삶을 살게 됩니다.

십자가의 능력: 인격적 씨름과 진정한 사랑

십자가는 마술이나 주문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기억하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내 속의 죄와 싸우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애씀과 노력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십자가를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는 극단적인 죄악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갑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로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본문 도입부

사사기 19장 1절부터 30절까지 나 살고 너 죽어라 오늘 읽은 사사기 19장 말씀중심으로 <나 살고 너 죽어라> 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나 살고 너 죽어라' 끊임없이 우리 마음이 '내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나는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다.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내가 연합해서 같이 죽은 것이다." 라는 이 사실을 누구를 만나든지 무슨 일 앞에서든지 기억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가 오늘 본문에 생생하게 기록이 돼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 우리 속에 들어있는 죄가 바깥으로 튀어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악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담이후로는 타락하지 않습니다. 이미 엄청나게 타락했고 악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악합니다. 단지 그 악함이 표현되고 있지 않을 뿐입니다. 교양으로, 교육으로, 문화적 습관으로 여러 가지로 통제되고 있을 뿐이지, 실제로 내 속에 악함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똑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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