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혹시 적그리스도는 아닐까? (슥11:1~17)
설교 요약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를 의미하며,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극심한 저주를 담고 있는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크고 큰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고백하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적그리스도적인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던 유대인 지도자들의 경우처럼, 겉으로는 신앙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메시아를 대적하는 위치에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쁨의 제조업자가 되는 순간
본문은 메시아가 오셔서 '은총'과 '연합'의 막대기로 양떼를 먹이실 것을 예언합니다. 그러나 메시아를 대적하는 자들은 이 은총의 막대기를 부러뜨립니다. 여기서 '은총'은 히브리어로 '노암', 즉 기쁨, 즐거움, 아름다움을 뜻합니다. 우리는 기쁨을 갈망하지만, 정작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배척하며 적그리스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기쁨이 아닌 스스로 기쁨을 제조하려는 행태로 나타납니다. '○○ 되었으면 좋겠다', '○○ 있으면 좋겠다'와 같은 조건 설정은 바로 기쁨의 제조업자가 되는 순간이며, 이는 곧 적그리스도적 행태입니다.
예수님을 노예로 삼는 위험
기쁨의 제조업자가 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노예'처럼 취급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은 30냥에 예수를 팔아넘긴 것은 예수님을 노예 한 사람의 값으로 여긴 것입니다. 열혈당원으로서 조국 독립이라는 기쁨을 제조하려 했던 유다처럼, 우리 역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려 할 때, 우리는 주인이셔야 할 메시아를 노예로 삼는 적그리스도가 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나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이러한 태도는 가장 저주받은 위치에 우리를 서게 합니다.
연합의 막대기가 부러지는 현실
메시아가 은총과 기쁨을 주려 할 때, 사람들은 두 부류로 갈라집니다. 하나는 십자가 사건 앞에서 기쁨 제조업자로서의 자신을 완전히 죽이는 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끝까지 자신의 기쁨 제조 방식을 고수하며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이 과정에서 형제, 부부, 부모와 자식 간의 혈연과 의리마저 깨어집니다. 기쁨 제조업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자들은 끝까지 예수님과 대적하며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나'
은총과 연합의 막대기가 부러지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는 'ㅇㅇ 이면 좋겠다'와 같은 선악과를 따먹은 효과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기쁨 제조업자로서의 나의 의식이 죽을 때,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 기쁨이 주어집니다. 돈이 없거나 대학에 떨어지는 등의 상황은 그저 '상황일 뿐'이며, 감사하지 않을 사건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이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나'**가 살아날 때 가능한 믿음입니다.
하늘에서 오는 기쁨의 승리
진정한 연합은 한 주인을 섬길 때 가능합니다. 자신의 기쁨을 스스로 제조하려 하지 않고, 오직 하늘에서 주어지는 기쁨만을 추구할 때,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늘의 기쁨은 잿더미, 풍랑, 감옥에서도 주어지며, 왕궁에서도 현혹되지 않게 합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기쁨의 디자인을 따르려 할 때 우리는 음성적 적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영원한 기쁨을 주시려 오신 메시아를 대적하지 않고, 십자가를 통해 나의 기쁨 제조 의식을 죽여야 합니다.
친그리스도, 그리스도께 헌신된 자
우리는 스스로 기쁨을 디자인하고 제조하려 발버둥 치며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조차 적그리스도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나의 기쁨 제조 입장이 온전히 죽게 하여,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기쁨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원수도 사라지고 형제간의 사랑이 가능해집니다. 하늘에서 오는 기쁨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적그리스도가 아닌 친그리스도, 그리스도께 헌신된 자로서 이 땅을 기쁨으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결론: 기쁨 제조업자에서 친그리스도로
우리는 선악과를 따먹고 기쁨의 제조업자가 되어 주님을 노예 취급하는 적그리스도의 입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나의 디자인한 기쁨이 아닌,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기쁨을 내게 주시는 복음의 현장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늘에서 오는 기쁨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지탱하며, 세상의 기쁨에 현혹되지 않게 합니다. 영원한 기쁨을 받으셔서 적그리스도가 아닌 친그리스도로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슬픔이 없고 땅을 돌아보아 감사하지 않은 사건이 없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내가 기쁨의 제조업자가 되는 구체적인 예시는 무엇인가요?
- ❓적그리스도적인 마음가짐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나요?
- ❓십자가를 통해 기쁨 제조업자로서의 '나'가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 ❓하늘에서 오는 기쁨은 세상의 기쁨과 어떻게 다른가요?
- ❓적그리스도적인 태도를 극복하고 친그리스도로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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