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29:1-8) 시온산의 성전과 숭산의 소림사
설교 요약
소림사적 삶: '나'로부터의 여정
소림사는 달마대사가 9년간 면벽 수련하며 졸음과 싸우기 위해 눈꺼풀을 베어낸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는 내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결핍을 채우려는 '나' 중심의 삶을 상징합니다. 소림사적 삶은 '나'의 정진, '나'의 깨달음, '나'의 소원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돈으로 명품을 사는 것, 증권 투자, 자식 양육 등 모든 것이 '나'에게서 출발하는 것은 소림사적 삶의 특징입니다. 이는 결국 시온의 원수가 되는 길입니다.
성전적 삶: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
성전은 번제물을 통해 '나'가 죽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이 나를 향해 내려오시는 곳입니다. 성전적 삶은 '나'의 필요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시고,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셨기에 '나'는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즉, 성전적 삶은 하나님에게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시온의 고통과 십자가의 의미
시온은 하나님과 자식 중 누구를 더 사랑할지 시험받고, 이유 없이 고난받으며, 인간적인 화합을 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정말 짜증나는 곳입니다. 내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일어날지라도 감사해야 하는 곳입니다. 시온은 내 주체가 사라져야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골고다 십자가가 portable 시온산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성전이 되었고, 우리는 싫어하는 상황을 감사하며 소원을 십자가에 못 박는 처절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바벨론 포로와 '나'의 주인 됨의 죽음
밭 가는 자들이 등을 갈아 길게 고랑을 지었다는 표현은 포로 생활의 고통, 즉 채찍에 맞은 자국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가 주체 되어 소원을 표현하며 사는 삶이 바벨론의 포로와 같음을 보여줍니다. 진정한 자유는 십자가에서 나의 주인 됨이 죽을 때 비로소 주어집니다. '나'의 정진, '나'의 벌이, '나'의 권법으로 살아가는 것은 실제로는 노예 생활이며, 아무리 잘 돼 봐야 지붕 위의 풀처럼 금방 시드는 삶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의 적극성과 '나'의 수동성
세례 요한은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주신 대로만 받고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소림권법으로 정진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적극성을 유효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동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나는 최대한 수동적이 되는 것입니다. 소극성과 수동성의 정점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음, 하나님과 하나 됨
돈 버는 소림권법, 자식 키우는 소림권법 등 '나'에게서 출발하는 모든 소림권법을 중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받아보십시오. 직장보다, 승진보다 더 좋은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실 때 비로소 만족하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내게 오시는 그 하나님을 내 마음에 모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나의 주체성을 완전히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어 하나님의 주도권이 발휘될 수 있도록, 시온의 원수로 행하는 삶을 중단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소림사적 삶과 성전적 삶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요?
- ❓십자가가 'portable 시온산'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 ❓왜 '나'의 주체성을 십자가에서 죽여야 한다고 강조하시나요?
- ❓하나님의 적극성과 나의 수동성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나요?
- ❓일상생활에서 소림사적 삶을 중단하고 성전적 삶을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요?
전문 읽기와 AI 질문은 앱에서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3개 언어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