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74:1-23) 지렛대의 원리에 역행하여

📖 시74:1-23시즌I_구약시편-1

설교 요약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의 상징성

예루살렘성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기혼 샘물이 S자형 지하 터널을 통해 예루살렘 안의 실로암 연못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외적의 포위 속에서도 생명줄이 유지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물이 맴돌다가 흘러가는 포석정의 유체역학적 원리를 연상시키며, 하나님의 지혜로운 설계를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디에 살든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할 때, 그들의 삶에도 하나님의 구원과 통치가 미쳤다. 하나님의 임재는 공간을 초월한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땅 밑으로의 여정

우리의 마음이 지상의 삶에 묶여 있을 때, 마치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둘러싸듯 문제에 둘러싸이게 된다. 이때 절대 그 문제들과 맞서지 말아야 한다. 대신, 우리의 마음을 땅 밑으로, 즉 지상의 삶에 대해 죽어 하나님께로 보내야 한다. 이 지하 터널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기도하는 것과 같다. 십자가는 지상의 삶에 대한 죽음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로 흘러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음을 받으시고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뜻과 판단을 나타내신다.

지렛대의 원리와 신앙인의 삶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 원리는 힘점, 받침점, 작용점의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삶 역시 이 원리와 같이 힘점(하나님), 받침점, 그리고 작용점(우리의 삶)으로 움직인다. 타락 이후 인간은 힘점인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작용점인 자신의 삶을 붙잡고 해결하려 애쓰며 지렛대의 원리에 역행하는 삶을 산다. 이는 마치 무거운 막대기의 끝을 잡고 들어 올리려는 것과 같아 진땀만 빠질 뿐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두는 것이 바로 지렛대의 원리를 따르는 삶이다.

성전 파괴와 신앙의 본질

바벨론에 의해 성전이 파괴되는 비극적인 현실 앞에서 아삽은 안타까움을 노래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근본적인 불신앙이 깔려 있었다. 성전은 단순히 건물이 아니라, 삶의 현실에 대한 마음의 죽음(번제)을 통해 오직 하나님만을 향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삶의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바알 숭배)에 매몰되어,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의 본질을 잊었다. 성전의 기능은 삶에 대한 죽음과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이었다.

십자가, 역행하는 삶을 바꾸는 힘

주님의 십자가는 작용점인 우리의 삶을 붙잡고 개선하려는 모든 수고와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청한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지상의 삶에 대해 죽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힘점, 즉 하나님께 마음을 드려야 한다. 다윗과 아삽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아삽은 망해가는 성전이라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끌어안고 힘쓰려 했지만, 다윗은 왕권 상실의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께로 피난했다. 하나님께로 도망가는 것, 하나님만 있으면 된다는 선언이 바로 신앙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드릴 때 주어지는 은혜

우리의 마음이 지상의 삶의 현실에 매여 애쓰는 대신, 십자가에서 죽고 힘점 되신 하나님께로 옮겨질 때, 삶은 지렛대가 지구를 드는 것처럼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면, 짓지 아니한 성읍과 파지 아니한 우물, 채우지 아니한 좋은 물건으로 가득 찬 집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두는 것이 바로 삶의 진정한 개선이다. 오늘 하루, 지상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께 마음을 보내며 그 사랑과 평강을 누리자.

본문 도입부

제목: 마음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본문: 시48;1-14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마음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하는 제목의 말씀 증거 합니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 가고 싶어 바다로 간다. 하여간 그런 가사가 있잖아요. 동요에. 마음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이렇게 물이 흘러흘러 가는 걸 생각하면 여러분, 뭐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 포석정이 생각나요. 통일신라시대 때 왕과 신하들, 아니면 귀족들 또 화랑들이 모여서 연회를 베풀고 쉼을 찾던 장소. 뭐 크지 않아요. 무슨 조개껍데기처럼 둥글게 만들어서 물이 흘러가도록 만든 다음에 그 흐르는 물위에 술잔을 띄웠다 그래요. 그러면 술잔이 이렇게 물의 흐름을 따라서 돌아가는데 그동안에 시를 지어야 된답니다. 시를 짓는데 시를 짓지 못할 경우에는 벌로 술을 석잔을 마시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이제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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