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일까? 돈일까? 아님 뭘까? (시편 8:1~9)
설교 요약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의 이름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말은 세상의 본질을 직시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릉의 먹거리 마을처럼, 산은 때로 기업이자 돈벌이 수단이 됩니다. 공원으로 지정된 산에서는 채취가 금지되고, 별장을 짓는 사람들에게 산과 물은 단순한 자연이 아닌 소유와 향유의 대상이 됩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 가장 먼저 담기는 것을 '신'으로 삼고, 그 신과의 연관성 안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마음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세상의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불교의 한계와 하나님의 계시
불교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마음의 만족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고 '비움'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채워지도록 만들어졌기에, 비우라는 가르침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집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신다면, 세상의 어떤 것도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깨달음은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같은 논리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채워지도록 만들어진 마음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만물에 깃든 하나님의 이름
다윗은 시편에서 '산은 여호와의 이름'이라고 노래합니다. 이는 산 자체가 아니라, 산이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백합화, 장미, 바다의 물고기, 심지어 원수까지도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이 됩니다. 이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리키는 대상으로부터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습니다. 이 세상 만물은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고 떠올리게 하는 간판과 같습니다. 다윗은 온 땅에 하나님의 이름이 가득함을 노래합니다.
젖먹이의 삶과 하나님의 권능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발견하는 자는 인간 세상 속에서 '젖먹이'와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젖먹이는 아파도 울 뿐, 원수 갚을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와 로마 군인들에게 고난받으실 때에도 젖먹이처럼 행동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김정은의 도발 앞에서도 믿는 자는 젖먹이처럼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두시고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젖먹이의 삶은 원수와 보복자들의 힘을 무력화시킵니다.
하나님의 손가락과 장갑으로서의 인간
인간은 자연 만물과 비교할 때 극히 작은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손가락이 끼는 장갑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주의 손가락이 우리를 움직이실 때 그대로 움직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젖먹이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해질 때, 우리는 젖먹이가 되고 장갑이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십자가 생활화와 하나님으로 충만함
내 생각이나 활동이 하나님의 손가락이 끼신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마음에 하나님이 첫 번째로 계시고 기도와 말씀으로 충만할 때입니다. 이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들입니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되고, 우리는 젖먹이가 되며 장갑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십자가를 바라보며 만물에 대해 뚫려있는 내 마음 자체를 죽은 것으로 인정하는 생활화가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 충만해진 젖먹이와 장갑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말과 본문의 '산은 여호와의 이름'이라는 말은 어떻게 다른가요?
- ❓인간의 마음이 채워지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하나님으로 충만해질 수 있나요?
- ❓만물이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킨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 ❓'젖먹이의 삶'을 산다는 것은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나요?
- ❓하나님의 손가락이 인간을 장갑처럼 사용하신다는 비유는 무엇을 설명하려는 것인가요?
- ❓십자가 생활화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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