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본래 그 사람이 아니다 (시편 96:1~13)
설교 요약
'나'에 대한 의식의 근원
우리의 '나'에 대한 의식은 관계 속에서 구체화됩니다. 부모, 자녀, 배우자, 직장 동료 등 '너'의 자리에 있는 대상이 있어야 비로소 '나'를 인식하게 됩니다. 이는 인간관계뿐 아니라 물질적인 소유나 사회적 지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너'는 모두 육체를 통해 관계하며, 이로 인해 우월감이나 열등감이 생겨나 갈등과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에 근거한 '나'의 모습입니다.
십자가 안에서의 자기 죽음
십자가에서 주님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인정하는 것은 곧 이 세상에 대한 죽음입니다. 이는 마음이 몸에 대해 죽는 것이며, 몸이 세상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몸에 근거하여 나를 만들어주던 모든 '너'의 존재, 즉 배우자, 부모, 자녀, 직장, 친구 등 세상의 모든 것이 십자가에서 죽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4장 26절에서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세상의 모든 '너'에 대해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할 때 비로소 하나님 크기의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최초의 상대자로
십자가 안쪽에서는 마음을 채우기 위해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늘로 올라갈 때, 예수님이 상대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첫 상대자가 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최초의 상대자로 하여 태어나는 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거듭난 나는 세상에서 파견된 자로서, 하나님으로 인해 생긴 기쁨을 배우자, 자녀, 동료 등에게 표현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육체적 자랑들을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다고 고백했는데, 이는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을 때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입니다.
'새 노래'와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권
시편 96편은 온 우주의 지배자이신 하나님의 통치권을 찬양합니다. '새 노래'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으로 부르는 노래를 의미합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각 민족마다 섬기는 신이 있었기에, 여호와 하나님이 온 지구의 만민을 다스리는 유일한 참 신이라는 개념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성전을 근거로 하나님의 우주적 보편성을 발견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문화적, 관습적, 언어적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님을 최초의 상대자로 관계하게 하는 길입니다.
번제단의 의미와 십자가의 완성
성전에서 드려지는 '예물'과 '아름답고 거룩한 것'은 단순히 뇌물성 제사가 아닌, 나의 죽음을 대신하는 희생 제물을 의미합니다. 번제단에서 어린 양이 죽을 때 내가 죽었음을 인정하는 것은, 육체에 근거하여 나를 찾았던 삶을 죽이는 것입니다. 육체에 근거한 모든 관계는 죄이며, 이러한 죄악 된 마음은 각을 떠서 번제로 드려져야 합니다. 번제단의 온전한 완성인 십자가가 우리를 죽이는 곳입니다.
본래의 사람으로 되찾아짐
십자가에서 죽지 않는다면 누구도 하나님이 의도하신 본래의 모습대로 살지 못합니다. 일본 아베 수상이나 김정은, 시진핑과 같은 지도자들, 혹은 배우자, 자녀, 부모, 심지어 교황까지도 십자가 안쪽으로 마음을 들이지 못하면 하나님의 본래 의도하신 사람으로 살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 속에 있는 본래의 사람됨은 모든 차이를 초월하며, 살아가는 곳이 어디든 파견된 자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십자가 전까지는 본래의 사람이 아니기에, 타인의 부족함을 긍휼히 여기고 위로하며 격려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십자가 안에서 '나'의 죽음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 ❓하나님을 '최초의 상대자'로 삼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 ❓성경에서 말하는 '새 노래'는 어떤 노래를 의미하나요?
- ❓번제단의 의미가 십자가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우리가 '본래의 사람'으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문 읽기와 AI 질문은 앱에서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3개 언어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