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킹하지 않은 십자가의 무력함 (시편 113:1~9)
설교 요약
십자가가 내 삶에 쇼킹한 사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복음임에도 불구하고 무력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이 삶에서 발현되기 위해서는 주관적으로 체감될 만큼 강력해야 합니다. 십자가 생활화는 복잡한 것이 아니라, 내 앞에 놓인 사건과 대상에 대해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고백하고 주님과 함께 부활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세상에 있지만 세상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이러한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지 않으면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 안에 사는 것이며, 세상의 가치에서 기쁨과 만족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가면, 승천하신 예수님이 계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마음의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 생활화입니다.
초대교회의 비밀: 충격적인 예수 사건
초대교회는 성경 지식이 많거나 도덕적으로 우월해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특별함은 예수님의 죽으심, 부활, 승천 사건이 그들에게 충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이나 대상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마음에 자리 잡았을 때 성령이 강림하셨고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 역시 예수님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왕으로 삼으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들에게 예수님을 자신들의 손으로 죽였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고, 자신들의 사건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 충격은 세상에 대해 죽을 수 있게 했고, 예수님의 사건이 자신들의 신변에 일어나는 어떤 사건보다 강력하게 여겨졌습니다. 이처럼 가장 강력한 사건이 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곧 나의 죽음과 부활로 이어졌습니다.
세상 가치관의 변화: 하늘로 향한 마음
기존의 세상은 돈을 모으고 가져야만 행복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건이 충격으로 다가와 세상에 대해 죽자, 마음은 세상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심으로써 마음은 하늘로 채워졌습니다. 그러한 이들에게 남아있던 돈은 전과 같이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이제까지는 돈으로 자신의 신변이나 자녀를 위해 사용했지만, 옆 사람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자 사용하고 싶어졌습니다. 구원받음의 증거가 이렇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받아 흩어졌을 때에도, 집을 잃거나 사업을 등지고 떠나야 하는 사실보다 예수님의 사건이 더 충격적이고 우선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떠돌게 된 것을 예수를 전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초대교회의 역사는 이러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시편 113편: 낮아지신 하나님의 사랑
시편 113편은 다른 찬양 시와 달리,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심이나 위대한 속성보다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낮추신 사실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나님은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고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지만,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십니다. 특히 가난하고 궁핍한 자, 임신하지 못하던 여인과 같이 세상에서 천대받는 자들에게 관심을 보이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나타내고자 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추상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 것으로도 부족해 나를 사랑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이셨습니다.
사랑의 크기 체감: 논리에서 감동으로
하나님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로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크신 분입니다. 그분이 동등 되신 아들을 지구 위의 티끌 같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이셨다는 객관적인 사랑의 크기를 주관적으로 체감하지 못하기에 십자가를 바라보아도 죽지 못하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고백해도 마음에서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놀라운 사역의 비밀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담긴 하나님 사랑의 크기를 보고 주관적인 충격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예수님의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눈앞에 밝히 보이듯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십자가 생활화의 열쇠: 반복적인 자기 교육
십자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보고 충격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사도 바울처럼 서신들 곳곳에서 반복되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기술을 통해 자신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업장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5분이라도 시간을 내어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감당하지 못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이셨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합니다. '이 사건과 사업 중에 어느 것이 더 크냐?'라고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사업이 망하는 것보다 더 큰 사건입니다. 자녀 문제나 건강 문제 등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암이라는 사건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의 크기를 비교해야 합니다. 이렇게 십자가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반복하여 자신에게 가르침으로써 주관적 체감에 이르게 됩니다.
십자가의 충격: 삶의 우선순위 재정립
삶의 현장에서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에게 반복해서 가르칠 때, 나의 주관적 체감의 크기는 점점 객관적 사랑의 크기로 커져갑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본래대로 느끼게 된다면 세상의 문제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멜리데 섬에서 독사에 물렸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처럼, 우리도 계속 발생하는 문제들 앞에서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나 한 사람을 위해 그와 동등하신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이신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을 계속해서 자신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내 영혼을 타이르고 설득시키면서 주님의 십자가 사건에 담긴 하나님 사랑의 본래 크기를 체감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십자가를 죽을 때까지 충격으로 여기며 살 때,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이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때 나의 손길에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입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발걸음마다 하나님의 계획이 진행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쇼킹하지 않은 십자가는 무력할 뿐입니다.
십자가의 재발견: 감흥을 넘어선 충격
지금은 감흥이 일어나지 않고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며 밋밋하고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대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가르칠 때, 죄악에 찌든 우리의 심성도 조금씩 눈을 뜰 것입니다. 이윽고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에 충격 먹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때 십자가는 더 이상 무력하지 않고, 삶의 가장 쇼킹한 사건으로 살아있게 될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십자가 생활화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야 하나요?
- ❓초대교회의 놀라운 역사가 오늘날에는 왜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요?
- ❓하나님의 사랑을 추상적인 것이 아닌, 주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 ❓십자가 사건의 객관적인 크기를 나 자신에게 반복해서 가르치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 ❓삶의 어려움 속에서 십자가의 의미를 붙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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