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통제, 개입, 주관하심 (시편 132:1~18)
설교 요약
하나님의 이름과 존재
장미꽃의 향기가 이름과 무관하듯, 존재 자체로 의미를 갖는 듯 보이지만 하나님과 연관될 때 이름은 결정적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전을, 신약 시대에는 성전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올바르게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올바르게 부를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통제 단계를 넘어 개입하시고, 나아가 주관하시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통제와 단속
하나님의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입에 담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삶 바깥에서 악의 힘을 관리하고 통제하십니다.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상태가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거나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팔아넘긴 사건처럼, 인간의 악한 소원과 계획조차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마치 낚시꾼이 물고기를 당겼다 풀었다 하듯, 우리는 하나님의 낚싯줄에 걸린 존재이며, 풀어진 듯해도 통제 바깥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 중 전적인 은혜로 선택받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지만, 여전히 삶의 주체성을 버리지 못한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개입하십니다. 출애굽 사건이나 아브라함에게 바로에게 나타나신 일, 룻과 보아스의 만남, 에스더의 사건 등은 모두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개입하시어 그들의 삶의 방향을 원하시는 곳으로 밀어붙이시고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관하심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관하심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격 안에 머무시며 뜻을 펼쳐 가시는 단계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하시며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 바로 주관하심이며, 이 관계에 참여할 때 영생이 주어집니다. 이는 솔로몬이 성전 준공식에서 다윗의 법궤를 향한 열심을 노래하며 하나님께서 영원히 쉴 곳을 얻으셨음을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마음
법궤는 하나님의 이름을 상징합니다. 다윗이 법궤를 그토록 성전에 모시고자 했던 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올바르게 부르기 위해 성전이라는 구조가 필요했고, 그 구조를 따라 부를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 들어와 편안히 쉬십니다. 이것이 곧 구원이자 영생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대해 죽고 깨끗해진 마음의 지성소에 하나님을 모실 때, 비로소 하나님의 주관하심이 우리의 삶 전체에 나타납니다.
십자가 생활화와 주관하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 죽는 것을 반복하는 십자가 생활화는 하나님의 주관하심을 이루는 핵심입니다. 하루에 열 번, 백 번이라도 십자가에서 죽음을 반복하며 하나님의 이름만을 붙잡고 만족하겠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편안히 임하십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통제나 개입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셔서 삶을 통째로 장악하시고 주관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생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올바르게 부를 때, 우리의 삶은 통제와 개입을 넘어 주관하심으로 나아간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하나님의 통제, 개입, 주관하심은 각각 어떤 의미인가요?
- ❓하나님의 이름을 올바르게 부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 ❓성전과 십자가는 하나님의 주관하심과 어떤 관련이 있나요?
- ❓'십자가 생활화'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나요?
- ❓하나님의 주관하심이 나타나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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