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의 확신’ 말고 ‘영생의 느낌’ (시편 21:1~13)
설교 요약
다윗의 노래는 전쟁 승리 후의 감사 찬양이 아니라, 사명 수행의 결과가 영생과 연결됨을 말한다. 왕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사명자는 자신을 객관화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 온전히 만족하는 사명의 전반부를 거쳐야 한다. 이를 통해 전쟁은 하나님의 일로 치러지며, 하나님의 스포트라이트가 되는 사명의 후반부가 이루어진다. 사명 수행의 결과로 영생을 얻은 자만이 땅에서 진정한 사명의 삶을 살 수 있다.
영생의 느낌, 사명 수행의 동력
예수님께서 칠십 인 제자들에게 귀신 항복보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신 것은 영생의 느낌을 강조하신 것이다. 사명 수행의 결과에 기뻐하기보다, 영생을 얻었기에 이 땅에서 사명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한다. 진정한 사명자는 사명 완수의 순간에 영생을 생각하며, 그 성취를 통해 다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을 기뻐한다. 영생의 느낌은 사명자만이 가질 수 있고, 영생의 느낌을 가진 자만이 사명자이다.
하나님이 주신 소원, 영생의 느낌의 발현
다윗의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원어적 해석은 영생의 느낌을 보여준다. 하나님으로 온전히 만족했을 때, 세상으로부터 더 이상 무언가를 얻으려는 소원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계획이 알려진다. 이때 돈을 벌고 싶다는 소원조차도 하나님께서 넣어주신 소원이어야 한다. 하나님으로 만족함이 영생의 느낌이며, 이 세상을 향해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은 상태에서 오는 하나님의 소원이 영생의 느낌이다.
하나님의 진노와 일치하는 마음
영생의 느낌을 가진 자는 원수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 대해 불평이나 원망이 없다. 왜냐하면 영생은 빼앗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분이 생긴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옮겨진 것이다. 예수님께서 성전 정화 시 분노하신 것도 하나님의 진노가 전이된 것이었다. 영생을 느끼는 자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일체가 되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한다.
죽음의 사소함과 영생의 현실감
영생의 느낌은 죽음이나 원수, 대적을 무척 사소하게 여기게 한다. 몸이 죽는 것조차도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천국에서의 삶이 시작되는 극히 사소한 사건으로 느껴진다. 육체의 죽음은 종이의 앞뒷면과 같이 느껴지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명을 얼마나 빨리 수행하느냐이다. 영생은 미래에 갈 것으로 여기며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지금 나에게 느낌을 주어야 하는 사건이다.
십자가 생활화를 통한 영생의 느낌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세상에 대해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을 따라 주님 안에 머물러야 한다. 밥을 먹거나 길을 갈 때, 누울 때나 손님을 맞이할 때에도 항상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 일용할 영생, 일용할 사명으로 하루를 채울 수 있다. 영생의 느낌 안에서 살 때, 우리는 땅에서 사명자가 되고 하늘에서 영생을 얻은 자로서의 충만함을 누릴 수 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영생의 확신과 영생의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요?
- ❓사명 수행의 결과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과 나의 소원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요?
- ❓죽음을 사소하게 여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나요?
- ❓십자가 생활화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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