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 예수와 다양한 그리스도들 (시편 37:1~40)

📖 시편 37:1~40시즌II_구약시편-2

설교 요약

'그리스도'의 본질과 오해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뜻하는 헬라어에서 유래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왕, 제사장, 선지자 등 기름 부음을 받은 많은 인물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특정 인물이 아닌 '기능'을 나타내는 말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은, 그분이 바로 그 '그리스도'라는 기능을 담당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리스도를 동일시하며, 마치 '미원'을 '조미료'처럼 습관적으로 사용합니다. 이로 인해 '다양한 그리스도'의 가능성에 대해 위화감을 느낍니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의 메시아, 즉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구원 개념에 맞춰진 '맞춤형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예수님만이 나의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신앙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밝히지 말라고 하신 이유도,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구원 개념에 예수님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는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구원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구원의 에너지와 '마음 채움'

'구원'이라는 단어는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 우리 삶을 움직이는 '추진력'이자 '에너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을 향한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가며, 이는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발현됩니다. 구원이란 결국 '마음 채움'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그릇과 같아서, 무엇인가로 채워져야 비로소 가치를 가집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외의 것으로 마음을 채우려 합니다. 돈으로 마음을 채워 만족과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에게 '그리스도'는 성공하는 투자법을 알려주는 사람이나 자기계발서의 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채움'은 곧 '구원'이며, 온전한 만족과 기쁨을 얻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마음을 채우느냐에 따라 우리의 믿음이 작동합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마음 채움'을 통해 일상에서 끊임없이 표현되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돈으로 만족과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은 돈을 신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부정부패를 통해서라도 돈을 벌며 삶이 형통해 보일 수 있습니다. 이때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는 것은 아직 '의인'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만족과 기쁨이라고 믿는 의인이라면, 그러한 삶을 부러워할 수 없습니다.

악인과 의인의 구분: 구원에 대한 태도

본문은 악인과 의인의 종국적인 차이를 보여주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악인들이 세상에서 얻는 기쁨과 만족은 일시적인 구원에 불과하며, 오직 의인만이 영원한 삶을 누립니다. 의인됨의 증거는 바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악인과 의인이 구원받지 못하고 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태도에서 악인과 의인이 결정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흔히 악인은 구원을 못 받고 의인은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구원에 대한 태도가 그들을 구분 짓습니다.

악인은 하나님 외의 것으로 마음을 채우려 하는 자들입니다. 돈, 명예, 결혼, 자녀의 형통 등으로 마음을 채우려 하면서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들이 바로 악인입니다. 또한, 예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개념의 구원을 가지고 다른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자들도 악인입니다. 교회 안의 악인은 예수님이 주시려는 구원과는 다른 구원을 생각하면서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악인들이 때로는 형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형통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우선순위

본문 4절은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종종 마음의 소원을 앞세우지만, 성경은 먼저 '여호와로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마음은 본래 하나님 사이즈로 만들어졌기에, 하나님으로 채워질 때 넘치는 기쁨이 이 땅을 향한 소원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소원은 내 마음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나의 소원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채우시면 기쁩니다. 하나님이 나를 채우고 넘쳐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신앙인에게는 소원보다 기쁨이 먼저입니다. 이 기쁨은 여호와로 인한 기쁨입니다. 의인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이 그릇으로 만들어진 마음을 채우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임을 믿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개념을 믿고 정의할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갖게 하실 유일한 그리스도는 예수님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돈이나 무병장수, 자녀의 형통 등을 구원의 개념으로 붙잡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악인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사신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갖게 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마음이 땅에 머무는 자들이라면 예수님을 엉뚱한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입니다.

십자가 생활화와 진정한 구원

예수님께서 자신을 그리스도로 알리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구원 개념에 예수님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 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찾았지만,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 역시 '잘 살아보세'라는 모토 아래 돈을 향해 달려가며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을 전하면, 돈으로 마음의 기쁨과 만족을 채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본래의 구원을 상실하고 전혀 다른 구원을 베푸는 그리스도로 전락합니다. 이것이 바로 악인이 하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큰 예배당을 짓거나 부유한 집사님을 부러워하는 것은, 돈이라는 가치 기준이 교회를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상에서 실패하고 낙오자가 된 자들이 교회에 와서도 돈 없으면 구박받고 멸시당한다면, 오히려 실패하면 자살하게 되는 비극적인 현실이 벌어집니다. 진정한 구원은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구원이 우리 삶에 일상적인 에너지가 되게 해야 합니다. 악인의 형통이 부럽다면 아직 의인됨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라는 호적은 얻었을지라도 아직 고아의 체질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의인됨을 매 순간 느끼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시편 37장 1절부터 40절까지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오늘 말씀 중심으로 <한 분 예수와 다양한 그리스도들>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한 분 예수와 다양한 그리스도들’ 제목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예수와 그리스도를 붙여서 부르는 것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그리스도가 있을 수 있다는 말에 위화감을 느낍니다. …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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