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위기의식, 나쁜 위기의식 (시편 71:1~24)
설교 요약
위기의식의 두 얼굴
콜레스테롤처럼 위기의식에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존재합니다. 이건희 회장이 기업 운영에 위기의식을 적극 활용한 것처럼, 세상적인 성공을 위한 위기의식은 저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 같은 나쁜 위기의식입니다. 이는 삶을 망치고 해롭게 할 뿐입니다. 김정은의 미사일 발사 같은 외부 상황에 대한 불안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불신앙의 증거일 뿐입니다.
선민의 위기의식: 유전죄에 대한 깨달음
진정한 선민이 가져야 할 위기의식은 유전죄에 대한 깨달음과 연결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 그리고 '나'라는 삼각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원죄의 체질로 인해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보다 육체로 접하는 세상에 먼저 반응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현실보다 우선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대한 위기의식이 바로 신앙인이 가져야 할 좋은 위기의식입니다.
삼각관계 속에서의 끌림과 도망
시편 기자는 늙고 쇠약해진 상황에서 원수들로 인한 위기의식을 토로합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실까 두려워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모태에서부터 택정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피조물인 악인들 때문에 궁극적인 위기에 몰릴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 스데반, 바울, 베드로 등 믿음의 선배들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위기의식 없는 평강을 누렸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우선적인 현실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앙망의 중단과 세상에 대한 위기의식
위기의식은 마음이 늙거나 약해졌다고 느낄 때, 당면한 현실을 극복할 수 없을 때 생깁니다. 이는 나 자신과 세상을 봄으로써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 중단되어 틈이 생기면, 삼각관계 안의 원수와 악인들에게 마음이 사로잡힙니다. 이 상태에서 버림받은 듯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육체적 약함을 하나님께 투사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 앙망의 회복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단순히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보고 있지 않는 동안에는 100% 자동으로 세상을 붙잡게 되므로 24시간 십자가를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십자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마음의 시선을 곧바로 닿게 하는 통로입니다. 십자가에서 이 세상을 붙잡으려는 마음이 죽었음을 고백할 때, 하나님을 진정으로 앙망할 수 있습니다.
좋은 위기의식: 십자가 생활화
세상을 향한 위기의식은 나쁜 콜레스테롤과 같습니다. 이는 형통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한 시라도 하나님에 대한 앙망을 그칠까 염려하고 위기의식을 갖는 것은 좋은 콜레스테롤이며, 이를 위해 십자가 생활화가 절실합니다. 좋은 위기의식을 가지고 십자가를 생활화할 때, 위기처럼 보이는 상황들은 오히려 삶의 궁극적 목적지로 달려가는 지름길이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지까지 형통의 형통으로 이어지는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세상적인 위기의식과 신앙적인 위기의식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 ❓하나님을 '우선적인 현실'로 삼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 ❓'십자가 생활화'는 어떻게 실천할 수 있나요?
- ❓위기 상황에서도 평강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 ❓하나님 앙망이 중단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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