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하기엔 아직도 먼 하나님 (시편 75:1~10)

📖 시편 75:1~10시즌II_구약시편-2

설교 요약

하나님과의 거리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가까이하기에는 멀리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었다면 항상 기쁨이 나타나야 하지만, 우리에게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우리의 영성이 잘못된 형태로 굳어져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대부분이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루어주세요', '구해주세요'와 같이, 우리는 처한 상황이나 문제와 씨름하며 하나님을 부릅니다.

씨름하는 영성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마치 외삼촌이 싸움을 말리려다 오해받아 사고를 당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부르는 행위 자체가 무언가와 씨름하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임을 드러냅니다. 돈 문제로 씨름하며 하나님을 찾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돈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제일 먼저 우리가 붙잡고 있는 문제로부터 뜯어 말리시는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유산 문제로 씨름하는 사람에게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워지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며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보다 문제로부터 우리를 떼어놓으십니다.

뜯어 말리시는 하나님

암과 씨름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건강 문제와 씨름하는 우리를 뜯어 말리십니다. 건강 문제를 끌어안듯이 하나님을 끌어안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를 알지 못한 우리는 싸움을 말리려는 사람을 편드는 것으로 오해하여 하나님을 밀쳐냅니다. 말리시는 하나님은 밀쳐내고 문제를 때려눕혀줄 하나님만을 계속해서 불러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가 멱살 잡고 있는 문제들을 공격해서 때려눕혀주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들의 멱살을 잡고 있는 우리를 뜯어 말리시고, 멱살 잡던 힘으로 하나님을 끌어안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십자가의 의미와 성전

구약에서 성전은 세상의 문제로 씨름하던 선민들을 뜯어말리는 곳이었습니다. 이는 십자가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십자가를 생활화하지 않는다면 문제나 과제와 멱살잡이를 하게 되고, 뜯어 말리시려는 하나님께 장작을 휘두르는 셈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문제를 끌어안고 싸우는 우리를 뜯어 말리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문제를 끌어안던 힘으로 하나님을 끌어안을 때에 하나님을 가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가까이

본문은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이름과 가까워져야 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습니다. 이 거리를 가깝게 하려면 땅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의 공격이라는 위기 상황 속에서, 히스기야는 자신과 여호와의 이름을 모욕하는 편지를 들고 성전으로 들어가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의 핵심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는 구절입니다. 이는 산헤립이라는 이름으로 멱살잡이를 하던 히스기야가 성전을 통하여 마음을 떼고 하나님의 이름을 붙잡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문제와 씨름하는 마음의 죽음

우리는 어떤 대상을 생각할 때 반드시 그 이름이나 이미지를 통해 생각합니다. 돈 문제로 씨름하며 하나님을 찾을 때, 돈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가장 가깝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전의 상번제에서 어린 양이 죽듯이 문제와 엉킨 마음을 죽은 것으로 여기자, 마음이 다시 태어나서 하나님을 가까이 모실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 가져야 할 감사하는 마음을 예언적으로 드러냅니다. 십자가는 문제로부터 우리를 뜯어 말리십니다. 문제로 여기며 얽혀있던 모든 이름들이 떨어져나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까이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름과 씨름하던 마음을 십자가 번제단에서 죽여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십자가 생활화

세상에 대해 마음이 죽을 때, 땅에 남겨진 문제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원래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기에 하나님의 문제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던 문제들을 도둑질하여 씨름하며 내 뜻대로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 문제를 붙잡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은 도둑질한 물건을 가지고 주인에게 가서 고쳐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십자가와 성전은 이렇게 도둑질하는 마음을 뜯어 말리시는 하나님의 은총적 사건입니다.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세상을 붙잡고 씨름하려는 우리를 뜯어 말리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붙잡는 삶

성전과 십자가의 존재 의미는 마음에 품고 사는 것에 있습니다. 이 땅의 그 어떤 문제나 어떤 사람도 붙잡고 씨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이름이 가까운 자리에 항상 머물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는 동안,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앗수르 군대 십팔만 오천 명이 하룻밤에 멸절 당했던 것처럼, 문제는 하나님의 일이 되어서 해결되고 이끌어나가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기에는 너무나 먼 영성적 상태는 오직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서만 수정될 수 있고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삶은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가능합니다.

본문 도입부

시편 75장 1절부터 10절까지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셀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가까이 하기엔 아직도 먼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가까이 하기엔 아직도 먼 하나님’ 제게는 얼굴도 모르는 외삼촌이 계셨습니다. 외가의 장남이셨는데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시다가 어머니가 계시는 창녕으로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동네에서 아는 사람들의 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말리다가 한 사람이 휘두른 장작에 머리를 맞고 젊은 날에 돌아가셨습니다. 싸움을 말리려고 했는데 편을 드는 것으로 오해한 사람이 장작으로 내리쳤다고 합니다. 말리다보면 어쩔 수 없이 어느 한 쪽을 강하게 제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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