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의 위, 함이 없는 행함 (신명기 19:14~21)

📖 신명기 19:14~21시즌II_구약신명기-2

설교 요약

복지의 내적 규정: 의도성 제로의 삶

복지의 외적 증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즉 '기쁨과 만족이 넘치는 삶'입니다. 내적 증거는 '의도성 제로의 땅'으로, 인위성을 찾아볼 수 없는 곳입니다. '자연스러움'은 인위성과 의도성이 드러나지 않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성형수술처럼 가장 인위적인 행위에서 자연스러움을 바라는 인간의 모순을 보여줍니다. 근본적으로 내 의도나 인위적 작위적 행위가 없는 삶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복지의 삶입니다. 복지의 삶에서는 내 의도성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무위(無爲)'의 진정한 의미: 하나님의 의도를 따름

노자의 '무위자연'은 인간의 의도성과 인위성에서 비롯된 난세의 해법으로, 자연을 따르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나 자연은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물 위를 걷고, 폭풍을 꾸짖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를 하신 것처럼, 선민은 자연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무위신이)**를 따릅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엘리야가 비를 내리게 하고,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게 한 것은 자연을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에 따른 것입니다.

경계표를 옮기거나 위증하는 유혹

'경계표를 옮기는 것'은 제비뽑기로 분배받은 땅에서 더 나은 것을 탐하여 자신의 인위성으로 삶의 터전을 확보하려는 유혹입니다. '위증'은 자신의 상황을 유리하게 바꾸려는 욕망으로, 말 한마디로 재판 결과를 좌우하려는 유혹입니다. 선민은 이러한 인위성과 의도성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경고받습니다. 우리의 출생, 부모, 생김새, 태어난 날과 죽을 날은 모두 하나님의 의도이며, 마치 땅을 제비뽑기로 분배받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내 의도 없이 태어나 하나님의 의도대로 살다가 죽는 존재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중간을 자신의 의도로 채우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 생활화를 통한 '무위의 위' 실현

내 의도와 인위적 결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선민은 **'무위의 위, 함 없는 행함'**을 통해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이는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가능합니다. 십자가를 잊지 않으면 마음이 세상으로부터 떠나고, 세상에서 좋은 것을 찾으려 하지 않게 됩니다. 인간의 의도는 십자가에서 주님이 하나님과 교제하시듯, 주님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의도하는 것에 투여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이유는 우리 안에 주님의 기쁨을 충만케 하기 위함입니다. 이 기쁨이 충만해지면 세상에 대한 소원과 계획이 사라져 의도가 나타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생활화로 가능한 '무위의 위'**입니다.

의도성을 가진 삶의 병폐: 살인과 믿음의 정지

의도성을 가지고 인위적으로 살 때 살인과 같은 일이 나타납니다. 기독교가 살인을 금하는 이유는 생명 경외가 아니라, 그 생명체에 깃든 하나님의 의도를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동물을 제물로 바치거나 먹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과도한 애착이나 북한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의도를 가지고 인위적으로 상황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순간, 믿음은 정지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끄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나의 의도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믿음은 의도와 인위성이 한 조각이라도 나타날 때 멈춰버립니다.

하나님의 의도만이 나타나는 삶

우리의 모든 의도는 십자가로부터 승천에 이르는 곳에서 주님과 하나님께서 누리시는 기쁨을 우리 안에 충만케 하기 위한 기도와 말씀 듣는 것에 다 들어가야 합니다. 충만해진 기쁨을 확인할 수 있다면, 세상에 나가 하는 모든 행동은 **'무위의 위, 함이 없는 행함'**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만이 나타나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의 결과가 하나님이 원해서 하시는 일이 됩니다. 사람들이 칭찬하든 비난하든, 내 마음에는 주님의 기쁨을 충만히 안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알고 순교까지 가는 것이 선민의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위의 위, 함 없는 행함'의 삶입니다.

본문 도입부

노자의 무위는 유위(有爲), 인위(人爲)의 반대이며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아닙니다. 자유자재하고, 스스로 그러하며,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 정신의 자기 표현인 자연을 따르는 삶이 무위자연이고 함이 없이 못 함이 없는 삶입니다. 선민의 삶도 무위의 위, 함이 없는 행함으로 특징 지워짐에서 같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선민은 자연을 따르지 않습니다. 자연을 지으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갑니다. 내 의도 제로인 삶. 복지의 내적 규정입니다. 무위의 위, 함이 없는 행함(신명기 19:14~21) 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 15.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16.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고 말하면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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