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자루를 항상 내가 쥐는 인간관계 (신 20:10~20)

📖 신 20:10~20시즌III_구약신명기-3

설교 요약

관계의 본질: 하나님과의 연쇄 과정

모든 인간관계는 하나님에 의한 있음없음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실 때, 제3의 대상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인간관계뿐 아니라 문제, 과제 등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됩니다. 칼자루를 쥔다는 것은 관계의 주도권을 실질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민은 하나님을 먼저 만나 꽁꽁 묶인 상태로 제3의 대상을 만날 때, 하나님을 크게 많이 가짐으로써 평강과 만족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몸으로 만나는 모든 대상과의 관계에서 칼자루를 쥐게 됩니다. 왜냐하면 선민을 통해 하나님은 창조주요 주권자로서 그 선민이 만나는 대상을 향한 뜻과 계획을 이루어가시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의미와 선민의 태도

성읍과의 전쟁에서 먼저 화평을 선언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굳건히 유지될 때 가능한 태도입니다. 화평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처럼 이스라엘 영내에 존재하며 하나님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들은 무조건 진멸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대체하는 다른 신, 즉 풍요와 다산을 마음에 두는 자들을 끊어내라는 경고입니다. 전쟁에 임하는 선민은 적군을 향한 감정을 실어서는 안 됩니다. 과실나무를 베지 말라는 명령은 사적인 적개심이나 증오심으로 무모한 징벌을 내리지 않도록 경고하는 것입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일이기에 불필요한 징벌을 더하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살인과 전쟁: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역할

살인은 하나님에 의한 있음을 없음으로 만드는 일을 상징하며, 이는 모든 대상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전쟁과 살인의 차이는 하나님께서 나를 도구로 쓰시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구로 쓰시면 전쟁이지만, 내가 멋대로 한다면 살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쟁을 **성전(聖戰)**이라고 부릅니다. 선민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아 적군을 죽일 수는 있지만, 멋대로 살인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과실나무를 베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 가르쳐집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처럼, 형제를 향해 쓸모없는 놈이라고 하는 것조차 살인죄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있게 된 사람을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은 내 마음에서 거부하는 것이며,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거부함을 살인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관계의 주도권: 하나님을 크게 가짐

모든 인간관계는 전쟁이며, 여기서 주도권은 하나님을 크게 가짐으로써 쥐게 됩니다. 제3의 대상에 대해 겁내거나 두려워하거나 떨거나 놀란다면 주도권은 이미 넘어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충만히 들어와 계시지 않으면 제3의 대상이 크게 느껴지고 압도당하게 됩니다. 요셉이 보디발 장군이나 바로 왕 앞에서 주도권을 쥔 것은 그가 하나님을 크게 가졌기 때문입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모든 집안일을 맡기고 왕좌뿐임을 인정했던 것은, 요셉의 존재감이 바로에게 작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크게 가짐으로써 얻는 관계의 주도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세상의 유혹과 가나안 족속의 유전자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도 가나안 족속들의 유전자를 보이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풍요와 다산, 즉 부자 됨과 형통함, 번영함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고 숭배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판단을 받으려 하지 않고, 오직 세상에서의 성공과 번영만을 원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상종하지도 말라는 의미로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번영과 성공을 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영적 유전자를 가진 자들을 내 마음에서 잘라내야 합니다.

승리의 선언: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삶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셨다는 승리 선언입니다. 설령 사장님이 해고하더라도, 내가 사장님 앞에서 해야 할 말과 행동을 다 해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다면 그것이 승리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돌에 맞아 죽었지만, 그의 죽음은 청년 사울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켰고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는 상황에서도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관계의 주도권은 항상 우리에게 있으며, 칼자루는 하나님이 나를 쥐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하여 세상의 존재감을 작게 느낄 때, 우리는 모든 인간관계의 전쟁에서 칼자루를 쥐고 하나님의 뜻을 펼쳐갈 수 있습니다.

본문 도입부

<칼자루를 항상 내가 쥐는 인간관계>의 줄거리 : 칼자루를 쥔다는 뜻은, 관계나 일에서 주도권이나 권한을 실제로 가진다는 것입니다. 선민은 하나님을 먼저 만나 꽁꽁 묶인 상태로 제3의 대상을 만나 관계합니다. 이때 제3의 대상으로 인해서 겁내며, 두려워하며, 떨며, 놀라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을 크게 많이 가져서 평강과 만족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몸으로 만나는 모든 대상과의 관계에서 선민은 칼자루를 쥐게 됩니다. 왜냐면 선민을 통해서 하나님은 창조주요 주권자로서 그 선민이 만나는 대상을 향한 뜻과 계획을 이루어가시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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