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의식이 제 팔자(?)다 (신 22:8~30)
설교 요약
‘우리’ 의식의 결정적 힘
무의식중에 뱉는 ‘우리’라는 말은 내 마음이 땅에 있는지 천국에 있는지를 드러내며, 결국 인생의 팔자를 결정짓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도록 정하신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마귀에게 속아 망가뜨려지는 삶을 살 것인지가 ‘우리’라는 의식에 달려 있습니다. 이 ‘우리’라는 의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저주받은 팔자에서 복된 팔자로, 지옥 팔자에서 천국 팔자로 바뀔 수 있습니다. 세상의 운명론과 달리, 우리는 마귀에게 이끌릴지 하나님이 정하신 삶을 살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며, 이 선택은 ‘우리’라는 의식을 통해 나타납니다.
‘우리’의 울타리를 넘어선 연결
집을 지을 때 난간을 만들어 다른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는 말씀은, 가족을 ‘우리’라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개념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염두에 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다스리심을 흘려보내는 존재로 세우셨습니다. ‘우리’라는 의식으로 가족을 묶으면 하나님의 계획이 담긴 관계의 그물망이 손상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소속감과 안정감을 위해 ‘우리 가족, 우리 회사’ 등 땅에 소속된 평면적 관계에서 ‘우리’를 찾지만, 본문은 이러한 ‘우리’의 개념을 타파하고 가장 기본적인 가족 단위부터 깨라고 촉구합니다.
하늘의 ‘우리’와 세상의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땅이 아닌 하늘에서 ‘우리’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우리’를 찾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 사위일체로 묶이는 ‘우리’를 놓치게 만듭니다. ‘우리’라는 표현은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배타성을 지니기에, 세상 소속을 ‘우리’라고 생각하면 사위일체로 묶인 ‘우리’를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무의식중에 세상 내용물이 담긴 ‘우리’를 말한다면, 내 마음이 여전히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이루어지는 사위일체 ‘우리’를 계속 확인하는 과정만이 하나님이 정하신 팔자의 인생을 살게 합니다.
차이를 드러내는 신앙의 ‘우리’
포도와 곡식, 소와 나귀, 양털과 베 실처럼, 천국 의식을 가진 사람과 세상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드러나야 합니다. 사위일체를 ‘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 사람들과 섞여 살 때, 아무런 차이가 없다면 선민 됨이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라는 의식은 신앙 점검의 지표가 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 내가 이루는 ‘우리’는 가장 배타적이고 폐쇄적이어야 하며, 이 안으로는 누구도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구분되는 ‘우리’가 아닌, 예수님 안에서 새사람이 된 자들의 분명한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전도가 이루어집니다.
‘우리’ 의식의 근원과 성 윤리
본문에서 남녀 관계가 언급된 이유는 이것이 ‘우리’라는 의식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녀 관계에서 시작된 ‘우리’ 의식이 가족, 동네, 나라로 확장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가 온전하기 위해서는 사위일체의 ‘우리’ 안에 남자나 여자가 끼어들 수 없고, 사위일체로부터 배타적으로 내쫓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값을 치르심으로써, 사위일체의 ‘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 사위일체의 ‘우리’ 안에 들어올 수 있는 대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남편, 아내,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위일체가 확고해야 이성 간에도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이룰 수 있습니다.
십자가로 죽이는 ‘우리’
‘우리’라는 말에는 천국 ‘우리’와 세상 ‘우리’가 있습니다. 천국 ‘우리’를 가져야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삶을 사는 팔자가 됩니다. ‘우리’ 속에 사위일체가 아닌 다른 대상이 들어있다면, 그러한 나를 끊임없이 십자가에서 죽여야 합니다. 그래야 무의식중에 ‘우리’라는 말이 나올 때면 반드시 사위일체의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폐쇄성과 배타성을 가진 ‘우리’라는 의식을 가질 때, 세상에서 어떤 상황을 마주하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차이를 드러내게 됩니다.
교회를 가리키는 유일한 ‘우리’
말씀드리는 ‘우리’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각자가 사위일체를 이루어 ‘우리’라는 의식으로 똘똘 뭉친 그 전체가 교회입니다. 이러한 교회를 땅에서는 유일하게 ‘우리’라고 쓸 수 있는 대상입니다. 그 외에는 본질적으로 ‘우리’라는 말이 적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편, 아내, 자녀, 나라, 이웃 등 세상에 있는 누구도 ‘우리’ 속에 포함되어서는 안 됩니다. 편의상 대화를 위해 ‘우리나라’라고 쓸 수는 있지만, 그 ‘우리’조차도 마음이 땅에 머물러 있음을 전제하기에 구분해야 합니다. 오직 사위일체를 이루는 사람들 전체로서의 교회만이 ‘우리’라고 표현될 수 있습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우리’라는 의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생의 팔자를 결정짓는가?
- ❓세상적인 ‘우리’와 하늘의 ‘우리’는 어떻게 구별되며, 어떻게 하늘의 ‘우리’를 가질 수 있는가?
- ❓신앙인으로서 세상 사람들과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차이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 ❓‘우리’라는 의식이 교회와 어떤 관련이 있으며, 교회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 ❓성경에서 금하는 ‘우리’의 개념을 범하지 않으면서도 일상생활에서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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