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강제이주를 통해 이루는 인내 (약1:1~11)

📖 약1:1~11시즌I_신약야고보서-1

설교 요약

시련을 통한 인내의 목적

야고보서의 저자는 시련을 당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시련이 우리에게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고통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시련이라는 비싼 값을 치르고 얻는 귀한 결과물로서의 인내를 의미합니다. 기독교의 인내는 세상의 다양한 인내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두려움이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 혹은 재산이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인내가 아니라, 인내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독특한 개념입니다.

십자가 생활화와 마음의 하늘 이주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십자가 생활화입니다. 이는 우리 마음을 세상의 어떤 대상에도 빼앗기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을 따라 하나님께 드리는 삶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의 마음은 땅에 대한 애착을 끊고 하늘로 향하게 됩니다. 마음이 하늘로 완전히 옮겨진 상태에서 몸은 이 땅에 남아있게 되는데, 이 하늘과 땅의 차이에서 비로소 기독교적인 인내가 발생합니다. 이는 더 이상 세상의 것에 묶이지 않고, 주님과 함께 머물고 싶은 소원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인내: 하늘로 향한 마음과 땅에 묶인 몸의 간극

진정한 기독교인의 인내는 마음이 완전히 하늘로 올라가, 지금이라도 몸을 떠나 하나님께 가고 싶은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상태에서 발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몸이 이 땅에 남아있어야 하므로, 가고 싶은 하늘과 몸이 있는 땅 사이의 간극을 인내로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어느 한 순간에 발동되는 덕목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지속적인 특성입니다. 온전한 믿음과 십자가 생활화가 이루어진 사람이라면 인내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마음의 강제이주와 시련의 의미

우리가 이 땅에 마음을 붙이고 있을 때 시련이 괴로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시련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강제로 하늘로 이주시키기 위해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땅에 붙은 마음을 떼어내기 위한 칼날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시련입니다. 마음이 이미 하늘로 옮겨졌다면, 땅의 것을 잃어도 상실감이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시련이 다가올 때, 우리가 이 땅에 마음을 붙이고 있었기에 괴로웠음을 깨닫고, 마음을 하늘로 옮기는 십자가 생활화를 더욱 힘써야 합니다.

인내를 통한 평강과 지혜의 구함

마음이 완전히 하늘로 올라가 인내를 이룬 상태는 불사조와 같은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세상 바다에 빠지지 않고 물 위를 걷는 것처럼, 어떤 것에도 묶이거나 빠지지 않는 평강이 주어집니다. 시련을 통해 이러한 인내를 이룰 때,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 이 땅에 대한 의욕이 사라진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해야 할 일들에 대한 특별한 지혜를 하나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성경 전체와 더불어, 나의 삶의 특수성 안에서 행해야 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풍성히 주실 것입니다.

의심 없는 믿음과 하나님의 인도

지혜를 구할 때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는 말씀은, 마음이 하늘로부터 분리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업 문제와 같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세상의 전문가나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은 두 마음을 품는 의심입니다. 인내를 이룬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말씀과 뜻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이용하실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그것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내가 깨어지고 마음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게 됩니다.

십자가 생활화로 시련의 확률 줄이기

시련이 우리에게 오는 많은 이유는 우리가 이 땅에 마음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강제 이주시키기 위해 시련을 주십니다. 이러한 환란을 당하는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십자가 생활화를 꾸준히 이어나가야 합니다.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시련이 주어지지 않고도 인내를 이룰 수 있으며, 혹시 시련이 주어지더라도 고통의 농도가 희석되어 평강의 날개를 달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내라는 덕목을 이루어주시기 위한 강제 이주이며, 우리는 이를 기뻐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고 하십니다. 이유는 시련이라는 정말 비싼 값을 치르고 고작 인내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쉽게 동의가 안 됩니다. 시련을 통해 고통을 치르면 무엇인가 좀 더 좋은 것이 손에 주어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인내를 이루게 되었으니 시련 만남을 기뻐하라는 말씀에 동기 부여가 될 수 있겠습니까? 대체 시련 속에서도 기쁨으로 이루길 바라야 하는 인내란 무엇인지를 알아야 겠습니다. 마음의 강제이주를 통해 이루는 인내(약1:1~11)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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