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의 확대경과 예수님의 망원경 (엡6:5~9)
설교 요약
확대경과 망원경의 이중성
우리는 일상에서 확대경이나 망원경을 안경처럼 쓰고 살아간다. 확대경은 가까운 것을 천 배 이상 확대하여 사물을 극도로 세밀하게 보게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24시간 손만 씻고 있어야 할 정도로 사소한 것에 집착하게 된다. 반면 망원경은 먼 곳을 가까이 보게 하지만, 가까운 것을 전혀 보지 못하게 만든다. 이처럼 우리는 마귀의 확대경을 통해 사소한 것에 매몰되거나, 예수님의 망원경을 통해 먼 곳만 바라보며 정작 눈앞의 현실을 놓치고 살아간다.
인류의 보편적 확대경 사용
아담 이후 마귀의 영향으로 타락한 인류는 보편적으로 확대경을 쓰고 살아간다. 이는 마치 17세기 레벤후크가 현미경으로 치아 속 박테리아를 발견하고 경악했던 것처럼, 사소한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손에 있는 세균 때문에 밥을 먹거나 악수하는 것조차 망설여지는 삶, 즉 사소한 것에 대한 과도한 신경 씀으로 인해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마치 24시간 목욕탕에 들어가 손만 씻고 있는 것과 같은 삶이다.
예수님의 망원경, 십자가의 역할
성경은 우리에게 망원경을 쓰고 살라고 말한다. 여기서 예수님의 망원경은 십자가를 의미한다. 십자가는 이 세상의 것들을 멀리 보게 하여, 세상에 대해 죽은 것처럼 살게 한다. 즉, 세상적인 것에 대한 무감각함을 통해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하늘을 볼 때, 세상의 모든 차이는 손바닥의 세균처럼 무의미해진다. 이는 세상적 가치관의 전복을 의미한다.
종과 상전의 새로운 관점
본문은 종과 상전에게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고 말한다. 이는 당시 노예들이 겪었던 비참한 현실과는 상반되는 말씀처럼 들린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육체의 노예 상태로부터의 해방을 말하고 있다. 인간 사회가 만든 노예제도 자체가 아니라, 오감으로 만나는 세상에 묶여있는 육체의 노예 상태로부터의 해방이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육체적인 신분 차이를 넘어선 영적인 해방을 경험한다.
역할과 존재의 구분
이 세상에서 노예 신분이라고 해서 존재 자체가 노예가 아니듯, 왕이라 해서 존재 자체가 왕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역할일 뿐이다. 배우가 배역에 충실하듯, 우리는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노예로서 상전을 섬기더라도, 이는 상전이 아닌 나에게 그 역할을 주신 감독 되신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기 위함이다. 즉,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늘과 땅의 차이
마귀의 확대경을 쓰면 박근혜 대통령과 일반인의 신분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주님의 망원경을 쓰면 이 차이는 손의 세균처럼 무의미해진다. 진정한 하늘과 땅 차이는, 이 세상의 권력이나 부를 가진 자들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결정하는 것과, 아무것도 아닌 신분이라도 하나님을 보면서 행동하는 것의 차이다. 하늘을 보고 하는 행동은 하늘에서 나온 것이고, 땅을 보고 하는 행동은 땅에 속한 것이다. 주부가 주부로서 하나님을 보며 설거지하는 것이, 삼성그룹의 흑자보다 하나님께 더 귀할 수 있다.
십자가를 통한 확대경 벗기
우리가 아직도 마귀의 확대경을 쓰고 있기에 육체에 주어진 신분의 차이가 크게 보이는 것이다. 십자가를 쥠으로써 확대경을 벗고 망원경을 쓰고 살아가야 한다. 십자가는 확대경을 벗고 망원경을 쓰게 하는 능력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놀라는 모든 차이를 발아래 밟으며 살아갈 수 있다. 진정한 해방은 십자가를 통해 하늘을 바라볼 때 시작된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마귀의 확대경과 예수님의 망원경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 ❓십자가가 어떻게 세상의 차이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나요?
- ❓사도 바울이 노예제도를 묵인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역할'과 '존재'를 구분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 ❓일상생활에서 '하늘을 보고 하는 행동'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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