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부러움 없는 예수 믿음 (에스겔 23:1~49)

📖 에스겔 23:1~49시즌II_구약에스겔-2

설교 요약

부러움의 본질과 믿음의 증거

부러움은 타인의 좋은 것을 보고 자신에게도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부러움의 대상이 누구를 향하느냐가 우리의 믿음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적인 가치, 예를 들어 로또 당첨, 명예, 부 등을 부러워한다면 이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오히려 자신을 부러워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을 통해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참된 믿음은 온 세상이 나를 부러워해야 한다는 확신에서 증명됩니다.

세상의 좋음과 하나님의 좋음

우리가 '좋다'고 여기는 대상은 마음에 기쁨과 만족을 주는 존재입니다. 제1계명에서 말하는 '다른 신'은 바로 이 '좋음의 대상'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좋음을 찾고 부러워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50억 로또 당첨을 부러워한다면, 마음의 좋음의 대상은 돈이지 예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부러워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완벽하게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좋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부러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부러워하는 것은 예수님이 좋다고 여기시는 대상을 나도 좋다고 여기는 상태입니다.

이스라엘의 음행과 세상에 대한 부러움

에스겔서 본문에서 오홀라와 오홀리바는 음행하는 두 자매로 비유됩니다. 여기서 음행은 우상숭배가 아닌, 강대국들과의 동맹 관계를 통해 나라의 안정을 꾀하려 했던 정치적 선택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방 나라들의 선진국과 강대국에 대한 부러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천막'처럼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기며 '견고한 성'을 가진 이방 나라들을 부러워했습니다. 이러한 부러움은 곧 다른 신을 섬기는 마음, 즉 신앙적인 음행이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부러움은 곧 다른 신을 믿는다는 증거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부러움의 전환

세상에 대한 부러움은 참는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부러움은 곧 다른 신을 마음에 품은 것이며, 이는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음행과 같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빠져나와 부활이라는 '사각지대'에 도달해야 합니다. 이 사각지대에서 우리는 세상에 대한 어떠한 부러움도 느끼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이고, 곧 세상에 대한 부러움에 대해 죽는 것입니다.

부활의 마음과 예수님 부러움

부활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의미 있는 일이 됩니다. 세상적인 성공이나 실패, 질병이나 건강 등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은 하늘을 가지신 예수님에 대한 부러움을 가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좋게 여기셨기에 승천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부러워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부러워하지 않으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생활화와 진정한 기쁨

우리의 원죄 체질은 세상의 가치를 좋게 여기게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보았다면 예수님을 부러워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적인 가치들이 주는 가짜 기쁨과 만족이 아닌, 진정한 기쁨과 만족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좋아하게 됩니다. 승진이나 보너스 없이도 이미 기쁨과 만족을 누리며, 설령 그런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으로 누리는 기쁨에 묻혀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가 좋다는 거짓말은 하나님의 좋음 속에 파묻혀야만 합니다.

예수님 부러움으로 채워지는 마음

우리가 예수님을 부러워하지 못했기에 바보처럼 살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러워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 좋은 것이 내게도 좋은 것이 될 때에만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이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생활화에 매진하여 세상에 대한 부러움을 죽이고, 부활의 자리에서 예수님만을 부러워함으로써 예수님에게 주어진 모든 좋은 것이 우리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일체되신 주님을 부러워할 때에 비로소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 아버지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에스겔 23장 1절부터 49절까지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두 여인이 있었으니 한 어머니의 딸이라 그들이 애굽에서 행음하되 어렸을 때에 행음하여 그들의 유방이 눌리며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져졌나니 그 이름이 형은 오홀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게 속하여 자녀를 낳았나니 그 이름으로 말하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예수 부러움 없는 예수 믿음>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예수 부러움 없는 예수 믿음’ 어떤 집사님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피아노를 체계적으로 배운 적은 없으나 잘 연주하는 곡이 하나 있었습니다. 다른 곡은 전혀 칠 수 없다고 합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봤더니 언젠가 피아노를 잘 치는 친구를 보면서 마음이 무척 부러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피아노를 전공하거나 체계적으로 배워보겠다는 생각까지는 없었기에 악보를 가져다 놓고 혼자 곡 하나만을 연습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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