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받을까봐 너무 무섭다(?) (에스겔 25:1~17)

📖 에스겔 25:1~17시즌II_구약에스겔-2

설교 요약

우리는 흔히 구원을 순간적인 감격이나 과거의 일로 여깁니다. 하지만 진정한 구원의 기쁨은 구원받지 못한 상태의 두려움을 자각할 때 비로소 지속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구원이 이미 완성된 상태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두려움과 떨림으로 이루어 나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마치 처음에는 싫었던 고수가 나중에는 없어서는 안 될 맛이 되듯, 구원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그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구원은 단순히 죽음 이후 천국에 가는 보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살아계신 하나님과 내 마음이 연결된 상태이며,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상태입니다. 이는 전파가 잡히지 않는 핸드폰처럼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서 벗어나, 십자가와 부활, 승천을 통해 마련된 유일한 공간에 머무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드리는 것이며, 예수님께 마음을 드릴 때 비로소 하나님과 라이브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이동: 세상과의 단절

구원받은 자의 마음은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어야 합니다. 아내, 자녀, 직장, 승진 등 세상의 어떤 것에 마음을 두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사람의 마음은 오직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기쁨을 땅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만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의 상태입니다. 따라서 타락한 인류에게는 마음이 땅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의 위조와 차단

구원에 대한 두려움은 선민과 이방인에게서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납니다. 선민은 구원의 내용을 위조하는데, 이는 예루살렘 성전 숭배를 통해 안전을 보장받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나타났습니다. 현대에도 많은 신자들이 죽은 뒤 천국 가는 것을 구원으로 여기며, 살아있을 동안에는 죄 사함을 받았으니 세상의 가치를 얼마든지 추구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자기기만이며 위조된 구원입니다. 모든 이단은 교묘한 방법으로 교인들의 마음을 땅에 묶어두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는 것보다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예배당 건축이나 교인 수 부흥에 기뻐하는 것은 마음을 땅에 묶는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구원의 가능성 자체를 외면하고 차단합니다. 그들은 선민의 나라가 망하는 것을 바라며 즐거워했습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보복성 심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원에 대한 두려움이 이방인에게 나타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에게 만민의 복의 근원이 되는 특별한 속성을 부여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과 인격에 연결되는 유일한 장치였습니다. 선민들의 성전 생활화를 통해 하늘 기운이 이방 나라까지 퍼져나가야 했지만, 오히려 세상 기운이 들어와 선민들을 삼켰습니다. 이는 주변 나라들의 마음속에 구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며, 마귀의 전략이 유효하게 작용한 결과입니다.

영적 전쟁과 마음의 동선

마귀는 선민에게는 구원을 위조하도록 유혹하고, 이방인에게는 두려움을 유발하여 적대하게 만듭니다. 현대의 무신론자들이 기독교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것도 이러한 영적 두려움의 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칠족을 멸하라고 하셨는데, 이는 땅의 기운을 밀어내고 선민의 나라로 세상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나중에라도 남은 생존자들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도 적용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즉시 해결하려 하기보다, 먼저 골방에 들어가 문제를 십자가에서 죽이고 마음을 하늘로 올려 보내 하나님과 라이브로 연결된 뒤, 하늘 기운으로 문제를 마주해야 합니다. 바울은 날마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상번제 역시 세상이 들어온 마음을 끊임없이 죽이는 과정입니다.

마귀는 하늘로 올라가면 얻게 될 감당할 수 없는 기쁨과 만족을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세상에서 마음을 붙이고 기쁨을 얻으려던 대상들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선민에게는 하나님을 부르면서도 세상을 추구할 수 있다고 속이고, 이방인에게는 세상 가치를 포기해야 하는 두려움을 주어 하나님을 배척하게 합니다. 그 결과 선민들은 구원을 위조하여 세상의 안정과 부흥을 추구하고, 천국은 죽은 뒤에 가는 보장된 곳으로만 여기게 되었습니다. 지금 천국 보좌에 계신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았다면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이 땅과 하늘을 잇는 동선을 만들었다는 것이 말씀 해석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두려움 극복과 감당할 수 없는 기쁨

이방인들이 선민의 나라를 적대시한 내면에는 영적인 전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 이방인들이 구원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민을 적대시했음을 드러내셨고, 선민들에게도 자성을 요구하셨습니다. 고수의 맛을 알기 전에는 두려웠지만, 알고 나면 없어서는 안 될 맛이 되듯, 구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두려워하신 이유는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저주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저주의 상태를 친근하게 느끼며, 진짜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지 못한 채 예수님이 주신 구원의 손길을 두려워합니다. 이 두려움이 교회를 초토화시키고, 교회가 구원을 위조하며 세상 것을 얻는 데 집중하게 만듭니다.

타락한 상태에서는 땅을 떠나는 구원이 가장 무서운 일이지만, 은혜 안에서는 감당하지 못할 가장 큰 기쁨입니다. 이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을 위해 타락한 상태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의 동선을 따라 하늘로 마음을 보냄으로써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라이브 연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귀의 궤계를 차단하고,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께 향하는 믿음의 여정을 통해 감당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에 빠져 사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에스겔 25장 1절부터 17절까지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네 얼굴을 암몬 족속에게 돌리고 그들에게 예언하라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폐할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동방 사람에게 기업으로 넘겨주리니 그들이 네 가운데에 진을 치며 네 가운데에 그 거처를 베풀며 네 열매를 먹으며 네 젖을 마실지라 내가 랍바를 낙타의 우리로 만들며 암몬 족속의 땅을 양 떼가 눕는 곳으로 삼은즉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구원 받을까봐 너무 무섭다(?)>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구원 받을까봐 너무 무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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