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오버하지만 말자 (에스겔 5:1~17)

📖 에스겔 5:1~17시즌II_구약에스겔-2

설교 요약

신앙의 진단: 외적인 문제 vs. 신앙의 문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 상태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합니다. 삶의 외적인 문제에만 집중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엄밀히 말해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본질은 마음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 좋아하는 상태에서 비롯됩니다. 삶의 문제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삶 속에서 살아계신 분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삶의 문제 자체가 문제로 여겨지지 않아야 합니다.

'요란함'의 의미: 신앙의 척도

본문은 선민이 이방인보다 세상 문제에 대해 더 지나치게 반응하는 '요란함'을 지적합니다. '요란하다'는 것은 영어의 'overdo'에서 파생된 말로,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놀라거나 과장되게 반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지금 세상 일로 인해 오버하고 요란을 떨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신앙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모습이 곧 영적인 나의 모습임을 인정할 때, 삶의 어떤 일에도 반응할 수 없게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자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오버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관점: 무반응의 이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을 진정한 나의 모습으로 인정한다면,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도 반응할 수 없게 됩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으므로 세상의 어떤 일에도 결코 반응할 수 없음을 믿는 것이 곧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좋으심을 마음으로 접하면 세상에 대해 보일 수 있는 반응은 무반응일 뿐입니다.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전제로 한다면, 삶에서 풍랑을 만났다고 해서 요란을 피우는 것은 다 오버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 풍랑 속에서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신 것은, “너희 왜 오버하고 있느냐?”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선민의 책임: 이방인보다 더한 '요란함'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이방인들 틈에 두어 선민들이 차별화된 모습을 드러내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선민들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오히려 이방인들보다 더 악하고 더 '요란함'을 떨었습니다. '요란함'은 실제 하는 일의 무게에 비해서 과장되게 반응하는 모습이며, 분노, 억울함, 시기, 복수심 등에 지나치게 반응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 선민이 이방인과 차별화되기를 바라신 것은 바로 오버하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선민들은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더 지나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까움'의 실체: 하나님 vs. 세상

선민들이 성소를 우상숭배로 더럽힌 이유는 하나님보다 아들을, 혹은 아들이 하나님보다 아버지를 더 '아까워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아까워하는 것들이 있음으로써 우리는 끊임없이 오버하고 요란을 떨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을 첫 번째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상번제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이 세상을 아까워하는 마음을 죽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첫 번째 현실로 여기지 않는다면 오버하기는 결코 중단되지 않습니다.

십자가 생활화: 오버함의 종결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주시겠다고 선택하신 선민들이 세상 일로 인해 울고불고한다는 것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노후 걱정, 건강 염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은 모두 오버하는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살아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 곁에 와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서 이 세상 것을 아까워하는 마음이 다 죽고, 하나님을 첫 번째 현실로 제일 아까운 분으로 내 마음에 붙잡을 때 이 세상을 향하여 절대로 오버하지 않고 요란 떨지 않게 됩니다.

오버함의 결과: 하나님의 불편한 심기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에게 당신 자신을 주시고자 선택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이방인들보다 더 오버하고 더 요란을 떠는 모습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괘씸하게 여겨지십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며, 결국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즉사하지 않고 살아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지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일로 인해 오버하고 요란을 떠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무서울 정도로 싫어하신다는 것은 여전한 사실입니다. 제발 더 이상 오버하기를 중단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에스겔 5장 1절부터 17절까지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되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거늘 그가 내 규례를 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를 둘러 있는 나라들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요란함이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보다 더하여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들의 규례대로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에게 벌을 내리되 네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내릴지라 그리한즉 네 가운데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먹고 아들이 그 아버지를 잡아먹으리라 내가 벌을 네게 내리고 너희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제발 오버하지만 말자>라는 제목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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