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1:1-11) 금미 별미

📖 스1:1-11시즌I_구약에스라-1

설교 요약

감동의 두 얼굴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동은 영화나 멋진 말에서 비롯되지만, 성경 속 고레스 왕과 유다인들의 감동은 그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들의 감동은 눈앞의 결과가 아닌, 먼저 감동하고 움직이는 자발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세상의 논리나 원칙을 초월하는,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듯한 순간적인 천재성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감동, 세상의 논리를 초월하다

고레스 왕의 성전 재건 결정은 신앙 교육이나 세상적 이익과는 무관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내 밖에 뚝 떨어져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누르고 갈등하는 과정 없이, 하나님의 뜻 자체가 곧 나의 소원이 되는 자발적인 움직임입니다. 70년 포로 생활 후 안정된 삶을 버리고 황무지로 돌아가는 유다인들의 결정 역시 이러한 하나님의 감동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

고레스의 생명과 권위, 그리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재정을 동원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부자가 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진정한 헌금은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에서 비롯됩니다. 과부의 헌신처럼, 감동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납니다.

감동의 진정한 대상

우리의 감동은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의 '금' 같은 물질적 풍요, 자녀의 성공, 좋은 집 등 눈앞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면 하늘의 '별' 같은 하나님의 뜻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 이유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볼수록 마음 깊이 느껴지고 움직이는 감동이 진정한 감동입니다.

십자가, 감동의 절정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를 감동시키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죽는 것입니다. 돈이 벌리든 망하든, 자녀의 일이 잘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우리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십자가 사건에 감동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전 됨이 이루어집니다.

삶의 실핏줄까지 파고드는 감동

자녀나 사업 앞에서는 십자가를 의식하며 죽을 수 있지만, 교인 간의 사소한 만남에서는 서로 죽지 못하고 판단하고 불평합니다. 삶의 실핏줄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주님의 십자가의 느껴짐과 감동이 밀고 들어가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십자가에서 죽고, 고레스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기를 소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우리 안에 생기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에스라 1장 1절부터 11절까지 금미 별미 오늘 함께 읽은 말씀중심으로 <금미 별미>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금미 별미’는 제가 줄여서 제멋대로 만든 말입니다. 유명한 독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금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면 별이 아름답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금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면 별이 아름답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금의 아름다움을 금미라고 했고, 별미라고하면 별의 아름다움을 줄인 말인데 한자말로 하면 성미(星美)가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성미라고하면 옛날에 저희 할머니, 어머니가 교회에 헌물 하시던 쌀 생각이 나서 그냥 별미라고 했어요. 금의 아름다움과 별의 아름다움, 우리는 과연 어느 아름다움에 감동하며 살고 있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감동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오늘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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