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소와 꿀벌 (수13:1-33)

📖 수13:1-33시즌I_구약여호수아-1

설교 요약

우리가 오늘 읽은 여호수아서 13장 말씀은 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까지 고려하여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이미 요단 동편에서 땅을 얻었고, 서쪽에서도 33명의 왕을 물리치고 땅을 차지했지만, 아직 얻을 땅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나이가 많아 물러나고, 이제 각 지파는 스스로 분배된 땅을 차지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아직 전쟁도 치르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을 미리 분배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과 같아 보이지만, 사실 떡 줄 사람은 바로 하나님이시기에 김칫국을 마시는 것이 정당화됩니다. 하나님께서 떡을 주실 것이기에, 우리는 복된 삶의 현장을 얻을 원리를 따라 살아가면 됩니다.

'나'에게서 시작되는 복과 저주

분배된 땅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하루를 살면서 가야 할 곳, 만나야 할 사람, 해야 할 일들, 즉 삶의 모든 영역과 시간들을 포함합니다. 직장, 가정, 학교, 이웃과의 관계, 교회 일 등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분배된 땅입니다. 이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느냐, 아니면 '저주의 땅'이 되느냐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똑같이 풀을 먹어도 황소는 배설물을, 젖소는 젖을 내놓듯, 똑같은 상황이라도 '나'의 상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땅이 저주받은 것처럼, 우리 자신으로 말미암아 분배된 땅이 저주받거나 복이 됩니다. 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너로 말미암아'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뿐입니다.

젖소와 꿀벌이 되는 원리: 법궤를 앞세우라

여호수아의 전쟁이 가르쳐 준 원리는 우리에게 분배된 삶의 현장에서 복지를 이룰 수 있게 하는 '젖소'와 '꿀벌'이 되는 원리입니다. 이는 바로 법궤를 앞세우는 것입니다. 법궤를 앞세운다는 것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며, 내가 생각하는 것을 멈추는 것입니다. 아담이 스스로 생각하며 선악을 판단했기에 에덴을 잃었듯, 우리가 분배된 땅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면 그 땅은 저주받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시는 하나님, 생각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의 이 가정의 형편을 허락하셨다'고 생각하면, 그 가정은 갑자기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로 바뀌어 버립니다. 이는 신비로운 일이며,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 모든 상황을 은혜로 바꾸는 열쇠

이 모든 원리는 궁극적으로 주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집약됩니다. 매일매일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최대의 취미이자 유일한 낙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생각할 때 마음이 하늘로 뜨는 것을 느끼며, 그 마음으로 가정을 보고, 선교회를 보고, 나라를 보며 이웃을 만날 때, 모든 것이 감사의 제목과 기쁨의 재료로 바뀝니다. 이것이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내가 차지해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삶의 현장에서 교인들이 느끼는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그 필요를 느끼게 된 기준 자체를 십자가로 죽여 버리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으로 나갈 때, 똑같은 상황에서도 젖과 꿀이 나오게 하는 젖소와 꿀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중립적인 현실, 복 혹은 저주는 나의 선택

눈앞에 보이는 상황 자체는 복도 아니고 저주도 아닙니다. 그것은 아직 중립적인 상태입니다. 이제 그것을 복지로 찾을 것인지, 아니면 저주의 땅으로 만들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내가 죽었음을 고백하며, 주님의 죽음이 이 세상에 대한 나의 죽음으로 현실이 될 때, 즉 '죽은 자다워질'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려오십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내게 주어진 모든 땅, 즉 가정, 직장, 학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를 기억하는 동안 하나님이 함께 계심으로 인해 젖과 꿀의 땅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질병, 가난, 건강, 부유함 그 무엇도 상황 자체로는 저주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축복일 때가 있으며,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이 결코 복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이든 주님의 십자가를 마음에 가지면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몸에 가시가 겸손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듯, 마음이 낮아지고 죽어버리면 주어진 모든 상황이 과분하게 느껴집니다. 이것이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젖소와 꿀벌 여호수아 13장 1절부터 33절까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여호수아서 13장 말씀 중심으로 <젖소와 꿀벌>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야기는 아직 땅 정복이 다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정복하지 않은 땅까지를 다 고려해서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게 땅을 나눠주라고 하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강 동편에서 이미 자기의 땅을 얻지 않았습니까? 이제 서쪽을 서른 셋 왕을 죽인 뒤에 그 서른 세 지역을 차지하고 난 상태인데 아직도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얻을 땅이 매우 남아 있도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어서 여호수아는 이제 무대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사라지게 되어서 모든 이스라엘 지파가 자기에게 분배된 땅들을 자기 스스로 이제는 차지해 나가야 되는 그러한 과제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 전쟁도 치르지 않은 땅을 미리 분배를 다 해버리는 거예요. 재미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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