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할 만큼 하나님을 빤히 보면? (수 10:1~43)

📖 수 10:1~43시즌III_구약여호수아-3

설교 요약

하나님을 빤히 바라본다는 것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이는 예배당 안에서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내 의식이 실제 하나님을 바라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른 것을 의식한다면, 그 이름은 공허한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이름은 실제 존재를 가리키기 위해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의식으로 하나님을 빤히 바라보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빤히 바라보는 행위는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 죽은 자라는 자아의식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 안에서만 우리는 하나님을 빤히 바라볼 수 있으며, 심지어 하나님이 민망해하시고 부끄러워하실 정도로 빤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신경 쓰시는 존재

우리가 하나님을 민망해하시고 부끄러워하실 정도로 빤히 바라볼 때, 하나님은 우리를 신경 쓰십니다. 마치 식당에서 누군가 자신을 빤히 쳐다볼 때 신경이 쓰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세상을 통치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을 행사하실 때 가장 신경 쓰시는 대상은 세상의 권력자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빤히 바라보는 우리 자신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보잘것없는 존재일지라도, 하나님을 빤히 바라볼 때 하나님의 주권은 그 사람을 중심으로 임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가정이라는 작은 삶의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신경 쓰시는 동안 내 가정을 주권적으로 통치해 나가시며, 나를 중심으로 삼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행사와 확장

여호수아 10장의 사건은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주권을 행사하시는 방식을 보여주는 포트폴리오와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지켜내며 하나님을 빤히 바라볼 때, 하나님은 나를 신경 쓰시면서 내 주변에 주권을 행사하십니다. 이는 마치 인테리어 업자가 자신의 공사 경험을 포트폴리오로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내가 맺는 첫 번째 관계의 대상, 즉 가족에게 임하기 시작합니다.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고, 다섯 왕과 관계를 맺으며, 일곱 왕으로 확장되어 가나안 남부 전체를 하나님의 주권이 장악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은 관계를 통해 퍼져 나갑니다.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과 여호수아가 하나님을 빤히 바라보는 태도를 보인 결과였습니다.

우박과 태양, 달을 멈추게 하는 능력

하나님의 주권은 우박이 떨어지는 날씨와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는 것까지 미칩니다. 이는 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표현된 사실입니다. 주권자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참새 한 마리 떨어짐부터 하늘의 별들의 운행까지 모두 주장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이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내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민망해하시고 부끄러워하실 정도로 빤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빤히 바라보는 나를 신경 쓰시면서 날씨를 주관하시고, 해와 달을 주관하십니다. 그럴 때 이 땅에서 내게 일어나는 일 중에는 날씨와 해와 달까지도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 안에서 나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이는 단순히 해와 달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왕 같은 존재들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

다섯 국가의 왕들이 동맹을 이루었지만 패배하고 도망가는 사건은, 세상에서 왕같이 여겨지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땡처리하듯 도매금으로 처리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그들의 권세 때문에 막히는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주권적으로 처리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날씨, 해와 달, 그리고 이 세상 각 분야에서 왕 같은 존재들에게까지 미칩니다. 왕들의 목을 발로 밟았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세상의 왕 같은 존재들이란 아무것도 아닌, 하나님이 신경 쓰지 않는 자들임을 의미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빤히 바라볼 때 하나님은 나를 신경 쓰시고, 세상의 왕 같은 존재들은 그저 하나님의 주권 행사 과정에서 처리되는 대상일 뿐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이름 지키기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이름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직장에 출근하든, 가정을 돌보든, 그것은 핑계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 현장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지켜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 떨어짐을 주장하시듯 직장에 있는 사람들도 주장하시며, 내가 하나님을 빤히 바라보면 나를 신경 쓰시면서 내가 속한 회사도 주관해 나가십니다.

가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맡기신 이유가 그 안에서 하나님을 빤히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민망해하실 정도로 빤히 바라볼 때, 하나님은 그 주부를 신경 쓰시며 가정에 대해 주권을 행사해 나가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고, 세상에 대해 죽은 자로서 하나님만 빤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신경 쓰시고 주변에 대해서 우리를 중심으로 주권을 행사하시며 넓혀 나가실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도입부

<민망할 정도로 하나님을 빤히 보면?>의 줄거리 : 우리는 각자 있는 곳에서, 가는 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지켜내야 합니다. 즉 하나님 이름이 가리키는 실제 하나님을 내 의식이 빤히 바라보기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십자가 예수님 안에서 세상에 대해 죽은 자라는 자아의식이 필수입니다. 이렇게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빤히 바라보기만 하면 벌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속한 삶의 판이 흔들리며 바뀌게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당신을 빤히 바라보는 나를 캠퍼스의 중심 침으로 삼아서 주변으로 주권 행사를 넓혀 가시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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