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33명은 매일 죽여야 내가 산다 (수12:1~24)
설교 요약
'나'를 살리는 33명의 왕
본문은 이스라엘이 요단강 동편과 서편에서 멸한 33명의 왕을 열거합니다. 여기서 '나'는 예수님 안에 있는 나,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진 나,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만을 이루며 사는 나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나'가 소멸하지 않고 살아있으려면 매일 적어도 33명의 왕은 죽여야 합니다. 왕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도 삶에서 매일 죽인 왕들의 명단을 만들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믿음의 삶과 왕들의 위협
복지의 삶, 즉 믿음을 지키는 삶은 매일 33명의 왕을 죽여야만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을 지켜낼 수 없고 왕들에게 정복당합니다. 믿음이 유지되는 복지의 삶은 선민인 나, 예수님 안에 있는 나, 하나님을 아버지로 갖는 나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는 고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날마다 33명 정도의 왕은 거뜬하게 죽여야 믿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의식하기와 추구하기의 대상
모든 사람은 깨어있는 동안 의식하기와 추구하기를 하며 살아갑니다. 의식하기는 어떤 대상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고, 추구하기는 기쁨과 만족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좇는 것입니다. 믿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만 의식하기를 적용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합니다. 믿음이 정복당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 보이는 것들을 의식하고 추구할 때 발생합니다.
요단강 동편의 두 왕: 있음과 좋음의 죽임
요단강 동편에서 죽인 바산 왕 옥과 헤스본 왕 시혼은 복지로 들어가기 전, 삶의 현장으로 나가기 전에 반드시 죽여야 할 두 가지를 상징합니다. 첫째, 세상의 모든 있음은 하나님에 의해 있게 된 것임을 기억하며 세상의 있음을 죽이는 것입니다. 둘째, 내 마음의 만족을 위해 채울 거리가 없기에 하나님의 유일한 좋음을 빼앗고자 하는 모든 왕들의 속성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삶의 현장으로 나가기 전에 세상 있음과 세상 좋음이라는 두 왕을 죽여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유일한 있음과 하나님의 유일한 좋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변화산 체험과 하나님의 좋음
하나님의 좋음을 세상으로 가지고 나가기 위해 변화산 체험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들은 죄의 습관과 관성 때문이며, 하나님의 좋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좋음 앞에서는 세상의 어떤 것도 좋음의 자격 자체가 주어질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의식하기와 추구하기에 가르쳐야 합니다. 돈, 건강, 성공 등 세상의 좋음은 휴지에 불과하며, 하나님만이 유일한 좋음임을 반복해서 상기해야 합니다.
복지의 참된 의미: 하나님의 뜻과 계획
성경이 말하는 복지는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오복(건강, 장수, 재정적 풍요 등)이 아닙니다. 복지란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내셔서 나를 통해 당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복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돈을 많이 벌거나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을 부러워한다면 아직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나만의 복이 따로 있으며, 그 복이 이루어지는 것이 복지의 삶입니다.
관계 속에서의 왕 죽임
삶의 현장에 나가면 배우자, 자녀 등 세상의 있음과 좋음이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대상들은 내 의식하기를 뺏어가고자 하는 왕입니다. 배우자나 자녀와의 관계가 복지가 되려면, 그들이 내 의식을 뺏어가는 일을 차단해야 합니다. 아무리 가깝더라도 하나님보다 가까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서 내 몸보다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먼저 의식하는 것이 복지의 조건입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하나님 의식하기는 선행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승리와 매일의 적용
우리는 왕을 죽일 수 없습니다. 배우자, 자녀, 건강, 돈 등이 좋음으로 등장하여 우리의 추구하기를 하나님으로부터 빼앗아 가는 상황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었음을 고백할 때, 나의 의식하기와 추구하기를 빼앗는 왕들을 죽일 수 있습니다. 매일 서른 명 이상의 왕들, 즉 있음을 가장하여 의식하기를 빼앗고 좋음을 가장하여 추구하기를 빼앗는 존재들을 죽여야 합니다. 복지의 삶이란 온전히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와 뜻하신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는 의식하기와 추구하기를 하나님께 지켜낼 때 가능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매일 33명의 왕을 죽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 ❓의식하기와 추구하기의 대상이 하나님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세상적인 좋음이 하나님의 좋음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요?
- ❓복지의 참된 의미는 무엇이며, 세상적인 복과 어떻게 다른가요?
-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먼저 의식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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