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설교’ 없는 교회를 꿈꾸며 (역대하 18:4~34)
설교 요약
거짓 설교의 위험성
거짓말 설교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그 기준을 알아야 합니다.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배우지만, 설교를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편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져 거짓 설교와 참 설교를 구분하는 기준이 희미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합 왕은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귀 기울여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거짓 설교가 개인을 파멸로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참 설교의 기준: 욥의 과정
참 설교의 핵심은 욥의 고백에 있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고 알몸이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즉, 자기-주권의 죽음을 통해 마음이 알마음(적심)이 되었을 때 하나님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는 바로 이 '알마음'이 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급박한 사건과 대상들 속에서도 하나님을 먼저 인정하며 살도록 돕는 것이 참 설교입니다.
마음이 붙잡은 것과 하나님
본문에서 아합 왕과 여호사밧 왕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마음으로 붙잡았습니다. 이미 마음이 세상의 소원에 묶여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이때 거짓 선지자들은 철 뿔을 만들어 전쟁 승리를 부추기며, 마치 하늘의 계시처럼 들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교는 결국 아합 왕을 죽음으로 이끌었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과 붙는 것이 죄이며, 이러한 죄를 용인하는 설교는 순도 100%의 거짓 설교입니다.
십자가, 알마음으로 가는 길
참 설교는 자식이나 사업의 형통을 붙잡은 마음 상태를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대신, 욥의 과정을 압축한 십자가 사건을 통해 세상에 붙은 마음을 떼어내고 알마음이 되게 하여 하나님과 연합시키려 합니다. 욥은 실제로 자녀를 잃어 알마음이 되었지만,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알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알마음이 된 상태에서 하나님을 보게 하고 하나님을 가지게 하는 것이 참 설교입니다.
거짓 설교의 특징과 분별법
거짓 설교는 사업, 병 치유, 자녀 형통 등 세상의 것을 붙잡은 마음 상태를 전제로 합니다. '하나님 잘 믿으면 형통할 것'이라는 식의 설교는 죄를 용인하는 거짓 설교입니다. 반면 참 설교는 세상과 붙은 마음을 십자가로 떼어내려고 합니다. 설교를 판단하는 간단한 방법은, 설교가 세상과 붙은 마음을 전제로 하는지, 아니면 십자가로 떼어내려 하는지를 들어보는 것입니다. 세상과 붙은 마음을 십자가로 떼어내는 설교가 나를 살리는 설교입니다.
십자가 생활화의 중요성
많은 목사님들이 아직 십자가 생활화로 이루어지는 참 설교의 기준을 알지 못합니다. 설교는 날마다 십자가를 오늘의 사건으로 전달하여 교인들이 하나님과 만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지고 계신 특별한 계획들은 설교자가 임의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것을 붙잡은 마음을 전제로 은혜와 축복을 약속하는 설교는 문제가 됩니다. 불평 없이 인내하라는 십자가의 삶을 통해 참 설교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거짓 설교와 참 설교를 구분하는 구체적인 기준은 무엇인가요?
- ❓욥의 삶에서 '알마음'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 ❓십자가 생활화가 설교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 ❓세상적인 소원을 붙잡은 마음이 죄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목회자가 거짓 설교를 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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