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엷게 하는 ‘크게 보기 중독’ (역대하 20:14~19)
설교 요약
중독의 실체: 크게 보기
우리의 믿음을 엷게 만드는 중독은 바로 ‘크게 보기’입니다. 이는 후천적으로 취득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체질과 같습니다. 삼라만상의 크기나 중요성을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보지 않고, 관심을 통해 확대해서 보는 이 중독은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만들어 믿음의 생명력을 사라지게 합니다.
위기 앞에서 하나님을 보라
여호사밧 왕과 백성들은 대규모 연합군의 침공 앞에서 금식하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이는 당면한 현실에서 죽더라도 하나님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음이 적들의 침공에 압도되어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때, 하나님을 보기 위해 삶의 현장을 등지는 금식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할 때,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시는 놀라운 응답이 주어집니다.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는 명령
하나님은 야하시엘을 통해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볼 때, 하나님이 보시는 크기대로 세상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긴 입장에서는 적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크게 보기 중독의 메커니즘
두려움과 놀라움은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크기보다 대상을 크게 보기 때문에 생깁니다. 마치 대형 스크린에 비친 목사의 모습이 실제보다 크게 보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사이즈에 맞게 만들어져 있기에 세상의 대상을 마음의 스크린에 띄울 때 하나님 크기로 느끼게 됩니다. 개미 같은 문제라도 마음의 스크린에 하나님 크기로 띄우면 거대하게 느껴져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중독 해소
이러한 ‘크게 보기 중독’을 끊어내기 위해 우리는 세상에 대해 가지는 관심을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세상의 대상은 관심을 통해 하나님 크기로 확대되어 우리 마음을 지배하지만, 십자가는 이러한 거짓된 것들을 무효화합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하나님을 마음으로 볼 수 있도록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여주시고 세상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삶의 결과
하나님을 볼 때, 우리는 세상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시는 것을 구경하게 됩니다. 전쟁, 사업의 어려움, 자녀 문제, 건강 이상 등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보기를 우선할 때, 두려움은 사라지고 세상일에 대한 구경꾼이 됩니다. ‘크게 보기 중독’을 십자가 생활화로 끊어내고, 하나님을 마음껏 모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일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크게 보기 중독’이란 정확히 무엇이며, 왜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중독된 채로 태어난다고 보십니까?
- ❓세상의 대상을 하나님 크기로 느끼게 되는 구체적인 과정과 그로 인해 믿음이 엷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는 명령을 인간적으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어떤 관점에서 이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크게 보기 중독’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 ❓하나님을 보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일이라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의 태도를 의미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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