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결코 돕는 분이 아니시다 (역대하 28:1~27)
설교 요약
'돕는 분'이라는 오해
즐거움 없이 사는 인생은 소모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의도에 따른 삶은 만족과 기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방해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남'이 되기를 원치 않으시기에, 우리가 남으로서 일을 하려 할 때 돕지 않으시고 오히려 방해하시며 곤경에 처하게 하십니다. 사전적 의미의 '돕다'는 '남이 하는 일이 잘 되도록 거드는 것'인데,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그런 식으로 돕지 않으십니다.
아하스의 범죄, '나를 돕게 하리라'
본문의 아하스 왕은 곤고할 때 다메섹 신에게 제사하며 '나를 돕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나를 돕게 하리라'는 구절에 있습니다. 어떤 상태의 '나'를 돕게 하려는 것입니까? 사업하는 나, 승진하려는 나, 자식을 잘 되게 하려는 나, 건강을 회복하려는 나. 하나님은 이러한 '나'를 돕는 분이 아니십니다. 아하스는 앗수르에게 침공당하고 나라가 수탈당하는 와중에도 앗수르의 신들을 섬기며 자신을 돕게 하려 했지만, 결국 그 신들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마음의 지성소, '하나님 이외의 것'
성전의 평면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마음의 지성소에는 가장 소중한 것, 즉 궁극적인 기쁨과 만족을 줄 것이라 믿는 대상이 담깁니다. 아하스 왕처럼 마음의 지성소에 돈, 자식, 혹은 세상적인 성공을 담고 그것으로 만족하기 위해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하나님을 버린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것으로 채워지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당신으로 채워지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을 버린다'는 것의 본질
'하나님을 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지성소에 돈을 담고 바알을 섬기는 것은, 마음의 지성소에 돈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식 때문에 기쁘지 않다면, 혹은 돈이나 외제차가 없어서 서운함을 느낀다면,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나의 기쁨과 만족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고 세상적인 것에 좌우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버린 증거입니다.
하나님과의 하나됨,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충만해지기를 바랄 때, 예수님과 성령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땅에 있는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 배부르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땅과 하늘을 잇는 통로를 만드셨습니다. 우리 마음이 주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리에 참여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나를 통해 당신의 계획을 수행'
세상일에 대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마음속에 하나님 이외의 것을 담고 하나님과 남이 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때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때는, 우리가 땅에 있는 내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만족하기 위해 추구하고 소원할 때입니다. 이 외의 세상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충만하게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수행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다윗이나 여호사밧과 같은 신앙 선배들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우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의 일로서 행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하나님은 왜 우리를 '돕는 분'이 아니라고 하시는 건가요?
- ❓마음의 지성소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담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 ❓세상적인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버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 ❓내 삶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수행해 나가시는 것'은 어떻게 경험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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