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9:1-28) 선수인가? 치어리더인가?
설교 요약
응원을 뜻하는 'cheer'는 헬라어 '카라'(얼굴)에서 파생된 단어로,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얼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얼굴을 보여주면 힘이 솟아나듯, 하나님께서 성전에 이름을 두시고 눈길과 마음을 두시는 것은 인간과 신이 얼굴을 마주하며 관계 맺기 위함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 모든 생각이 향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얼굴을 마주 대함
성전에서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은 '이름을 두고, 눈길로 바라보며, 마음을 두는' 관계입니다. 이는 인간과 신이 신인동형론적으로 쉽게 관계할 수 있도록 알려주시는 방식으로, 서로의 관심의 전부가 되는 진정한 만남입니다. 반면, 다른 신을 섬기거나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행위입니다.
선수와 응원단장: 하나님이 선수, 우리가 응원단장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뛰는 선수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얼굴을 보여드리는 응원단장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외면하는 대신, 내 생각과 판단을 죽이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 즉 '율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 생각의 죽음을 통해 가능합니다.
내 생각의 죽음: 십자가의 번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어려운 이유는 내 생각과 판단이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는 말씀이 들어가지 못하고 엉켜버립니다. 성전의 번제, 즉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는 것은 내 생각이 불타 죽고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대하게 되는 길입니다. 십자가를 기억하며 내 생각과 판단, 소망을 죽일 때,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선수로 뛰십니다.
삶의 현장에서의 응원: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라
홍해 앞에서 모세가 백성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한 것처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할 일은 내 생각과 판단을 죽이고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선수로 뛰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우리는 선수가 아니라 응원단장이며, 하나님이 뛰시는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 되심을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가 사는 삶: 말씀에 사로잡혀 움직임
바울은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고 고백했습니다. 겉으로는 우리가 자녀를 키우고 일을 하지만, 마음으로 십자가를 기억하며 내 생각이 죽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달게 느껴지고, 그 말씀에 사로잡혀 움직이게 됩니다. 이는 곧 말씀이 하는 것이며,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수로 뛰실 때, 우리는 그저 얼굴을 보여드리는 응원단장일 뿐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서 선수로 뛰시게 하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내 생각과 판단이 죽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 ❓십자가를 기억하는 것이 내 생각을 죽이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 ❓삶의 현장에서 내가 치어리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하나님께 얼굴을 보여드린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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