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식의 좀비들 속에서 사람으로 살기 (열왕기상 13:7~10)
설교 요약
현대 사회는 '좀비'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로 가득하다. 노동자, 직장인, 청소년, 노숙자까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보다 주어진 틀 안에서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좀비와 다르지 않다. 이는 태초 창조 직후, 문제의식이라는 바이러스가 세상에 퍼지면서 시작되었다. 영적인 의미에서 시체란 하나님의 뜻이 끊어진 상태를 말하며, 선악과를 따먹고 자신의 뜻대로 살기 시작한 아담과 하와부터 좀비가 된 것이다. '왜 나는 돈이 없지?', '왜 나는 스펙이 부족하지?'와 같은 문제의식은 시체들의 움직임일 뿐이다.
시련의 의미: 전염되지 않는 삶
성경은 좀비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선민을 가려내 사람으로 회복시키시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회복은 성전을 통해 이루어지며, 자신이 좀비임을 깨닫고 번제단에서 죽어야만 한다. 그러나 좀비 됨이 죽고 선민으로 회복된 자들이 위험한 이유는, 여전히 좀비로 남아있는 자들과의 만남에서 나타나는 강력한 전염성 때문이다. 좀비 영화처럼, 좀비에게 물리면 인격과 감정, 생각이 사라지고 맹목적인 공격성만 남게 된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전염성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하나님의 명령: 단절의 급박함
열왕기상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왕의 제안을 거절하며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다. 이는 좀비의 문제의식에 전염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이다.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지 말라'는 말은 좀비를 피할 때처럼, 급박한 단절을 요구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처럼, 생존을 위한 걱정은 좀비에 전염되어 나타나는 병적인 증상이며 좀비의 징후이다.
사탄의 언어 체계: 문제의식의 발동
'내일은 뭐 먹고 살지?'라는 질문은 본래 사람에게는 이상한 질문이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자 아버지로서 자녀들을 돌보시는데, 육체의 생존을 걱정하는 것은 사탄의 문제의식이 전염된 결과이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문제 삼게 하여 문제의식을 일으켰다. 참새나 백합화도 걱정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하는 것은 이상하다. 동성애 문제 역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야 한다'는 것을 문제 삼아 전염된 결과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희미해졌기에 이러한 문제의식이 기독교 안에서도 전염되어 버렸다.
하나님의 언어 체계: 십자가의 능력
돈을 추구하는 것도 '돈이 없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전염된 결과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모든 것을 입히시고 먹이시고 살리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좀비에게 전염된 사람들은 아무 곳에나 문제의식을 발동한다. 내 속에 문제의식이 살아있을 때에는 모든 것이 문제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비들 속에서 어떻게 전염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바로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는 것이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처럼 문제의식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머무는 것은 문제의식을 제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다.
십자가 생활화: '나는 죽었다'는 고백
사장님이 문제의식으로 가득 차 야단칠 때, 우리는 육체의 눈과 귀로는 사장을 대하더라도 마음의 눈과 귀로는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는 죽었다'는 고백을 할 때, 문제의식의 전염성을 철저하게 막을 수 있다.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을 보며 굴욕적인 야단을 참으면서도, 마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며 '내가 죽었다'는 고백을 왜 하지 못하는가? 십자가를 바라보며 세상에 대해 죽은 자임을 알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문제의식이 임하기를 바라야지, 사장님의 문제의식이 나에게 전염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의식에 전염되면 좀비가 되어 에덴 바깥으로 쫓겨나고 만다.
그리스도 연쇄 과정: 하나님의 문제의식
세상의 삶에 대한 두려움, 분노, 원망, 걱정, 염려라는 문제의식은 좀비의 삶이 되게 하고 전염시킨다. 온 대한민국이 사교육에 미쳐 일류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은 좀비들이 되어 문제의식에 전염되었기 때문이다. 학원에서 눈이 퀭해져 나오는 아이들은 부모의 문제의식에 전염된 좀비들이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지만, 마음으로 십자가를 끊임없이 바라봄으로 사람으로서 회복된 삶을 살 수 있다. 사람이 되면 삶의 현장은 무조건 에덴이 되고 평강이 지배한다. 그러므로 '죽으면 죽으리라'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이 한 가지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나는 삶의 현장에 대해 죽었사오니 이 현장에 하나님의 통치가 내려오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며 내가 해야 될 일이 있다면 하나님의 문제의식으로부터 나를 움직이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문제의식으로 말미암은 움직임은 항상 기쁨과 쉬지 않는 기도, 범사에 감사로 나타난다. 그러나 걱정과 두려움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좀비의 기도일 뿐이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좀비와 같은 삶에서 벗어나 사람으로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 ❓문제의식의 전염성을 막기 위해 십자가를 어떻게 나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가?
- ❓하나님의 문제의식과 사탄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 ❓현대 사회에서 좀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 ❓개인의 삶에서 '나는 죽었다'는 고백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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