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11:1-3) 아달랴, 변태할머니
설교 요약
왕궁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 여과 없이 허락되는 곳이지만, 이는 오히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대신 변태와 광기에 사로잡히게 한다. 중국 영화 '황후화'나 로마의 아그리피나와 네로의 이야기는 이러한 왕궁의 도착적인 심리 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욕망이 모두 충족될 때, 예외 없이 광기 어린 미치광이가 될 수밖에 없다.
아달랴의 광기, 욕망의 허락
아달랴는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서 태어나 인간의 근본적인 본능과 욕망을 따라 살았다. 남 왕국에 와서 바알 숭배를 퍼뜨리고 왕비가 된 후, 아들 아하시야 왕이 죽자 손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 이는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한 극단적인 광기의 발현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행위이다.
정상의 기준, 하나님의 뜻
우리는 모두 영적으로 볼 때 변태가 아닌 사람이 없다. 정상에서 벗어난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이 우리의 본능적인 욕망을 막고 차단시키시기 때문에 그나마 유지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는 아버지가 행하시는 것을 보고 행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우리를 정상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다.
세상의 기쁨, 얕은 만족
'매니아'라는 말처럼, 세상에서 허락되는 기쁨과 쾌락은 매우 얕다. 자동차, 골프, 성적인 쾌감 등은 잠시의 만족만을 줄 뿐, 마음을 쏟아부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결국 이러한 얕은 만족을 좇는 것은 더 깊은 변태와 광기로 이어질 뿐이다. 마치 삽질할 때 바위에 막히듯, 마음만큼의 기쁨을 얻을 수 없다.
교회, 변태들의 소굴이 되다
오늘날 교회가 왕궁처럼 변태들의 소굴이 되고 있다. 칭의를 받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욕망을 아무렇게나 드러내고,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은혜를 주셨다는 말씀을 오해하여 방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변태 소굴로 변해가는 교회를 바로잡을 길은 오직 십자가뿐이다.
십자가 앞에서, 깡그리 죽어야
죽으나 사나 주님의 십자가밖에는 답이 없다. 십자가 앞에서 내 욕망을 깡그리 죽여야 비로소 하나님이 보이시고, 아버지로서 실감 나게 된다. 주님의 십자가 없이 내 욕망을 이루려 안달복달하는 삶은 결국 광기 어린 인생의 발자국을 만들 뿐이다. 오직 십자가에 달려 죽는 자만이 천국을 볼 수 있다.
정상인으로, 하나님의 소원 따라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거점으로 삼아 변태들로 가득한 세상을 바꾸어 가실 것이다. 내 욕망을 십자가에서 죽이고, 광기 어린 인생의 발자국을 만들지 않으며, 오직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과 바람을 알아채고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상인으로서 살아가는 길이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왕궁이 변태들의 소굴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아달랴의 행동이 왜 '변태'로 간주되나요?
- ❓세상의 쾌락을 좇는 것이 왜 변태와 광기로 이어지나요?
- ❓교회가 변태들의 소굴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 ❓십자가가 인간의 변태와 광기를 치유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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