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13:14-25) 하나님 사랑, 마이동풍

📖 왕하13:14-25시즌I_구약열왕기하-1

설교 요약

하나님 사랑의 본질: 응답과 소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모두 '하나님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행위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응답하지 않는 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상의 사랑의 표현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주시겠다는 말씀이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는 길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이동풍: 무감각한 영적 상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성경의 이야기나 설교는 종종 '마이동풍(馬耳東風)'과 같습니다. 봄바람이 불어도 말에게는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말이 아무런 감흥이나 깨달음을 주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마이동풍처럼 들린다면, 이는 우리가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요아스 왕의 기대와 엘리사의 의도

북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는 극도로 미약해진 군사력으로 인해 아람과의 전쟁을 걱정하며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옵니다. 그는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말이여'라 부르며 유일한 의지처로 삼습니다.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활과 화살을 들게 하고 동쪽을 향해 쏘게 한 후, 땅을 치게 합니다. 이는 엘리사가 아닌, 요아스 왕이 하나님과 직접 동행하며 전쟁을 해결해야 함을 강조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였습니다.

세 번의 화살, 무관심의 증거

요아스 왕이 땅을 세 번만 치자 엘리사는 분노합니다. 이는 요아스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해 전혀 개념 없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엘리사가 하나님을 믿든 바알을 섬기든 상관없이, 단지 아람 군대만 무찔러 주면 된다는 생각으로 엘리사에게 의지했습니다. 엘리사는 요아스의 무관심을 꿰뚫어 보고, 그의 행동이 하나님의 역사와는 무관하게 언약 때문에 주어질 기회임을 알기에 분노한 것입니다.

죽은 자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엘리사가 죽은 후 그의 뼈에 시체가 닿자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는 엘리사가 살아있을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의 말과 생각이 죽은 자였기에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통해 역사하시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처럼 이미 이 땅에 없는 이들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엘리사의 뼈가 죽은 자를 살린 것처럼, 하나님은 완전히 죽은 자에게서 역사하십니다.

'나'의 죽음, 하나님 사랑의 시작

요아스가 하나님과의 동행에 무감각했던 이유는 그가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이 살아있었기에 하나님이 그의 삶에서 죽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나'의 죽음이 필요합니다. 사업, 자녀, 관계 등 삶의 모든 상황을 나의 판단 기준 없이 고스란히 수용하는 것, 즉 '뼈만 남은 엘리사의 몸처럼' 죽은 자가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의미 있게 들립니다.

마이동풍을 넘어서는 길

자신의 삶을 개선하려는 생각 자체가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이며, 이는 하나님을 배제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을 아무리 외쳐도, 자신의 삶을 바꾸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에게는 마이동풍처럼 들릴 뿐입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죽은 것으로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에게만 하나님 사랑의 말씀이 의미 있게 들립니다. 엘리사의 마른 뼈처럼 이 세상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만 살아있는 자가 될 때, 하나님과 진정으로 동행할 수 있습니다.

본문 도입부

열왕기하 13장 14절부터 25절까지 하나님 사랑, 마이동풍 오늘 함께 읽은 말씀중심으로 <하나님 사랑, 마이동풍> 이라는 제목의 말씀 증거 합니다. '하나님 사랑, 마이동풍'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야기도 될 수 있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말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행위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응답하지 않는 한 아무 의미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사랑을 주시지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제대로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같은 미물, 우리 같이 추악하고 더러운 죄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상의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갖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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