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14:1-22) 상습적 도핑의 결과
설교 요약
'도핑'은 경기력 향상을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신체를 극도로 긴장시키고 엄청난 피로를 유발하며, 상습적으로 행할 경우 몸을 망가뜨린다. 프로 레슬러들의 사례처럼, 상습적 도핑은 심장 벽과 혈관을 낡고 얇게 만들거나 정신 착란을 일으켜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단순히 신체적인 문제를 넘어, 존재 자체를 파멸로 이끄는 행위이다.
신앙의 도핑: 성공과 형통의 양날의 검
신앙생활에서도 '상습적 도핑'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남 왕국 유다의 9대 왕 아마샤의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아마샤는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마음이 교만해졌는데, 여기서 '교만'은 자신을 높이 치켜드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운동선수에게 근육 강화제가 도핑 역할을 하듯, 우리 삶에서 성공과 형통이 자신을 높이 치켜드는 도핑 역할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성공과 형통이 은혜와 축복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교만과 파멸로 이끄는 도핑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산당 신앙: 내 생각과 소원을 죽이지 못함
아마샤가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우상 숭배는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생각과 소원을 죽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죽이는 곳이었다면, 산당은 내 생각과 소원을 그대로 보존하고 하나님께 구하는 곳이다. 오늘날 교회가 산당화되어 가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자신의 생각과 소원을 죽이지 못하는 것은 곧 '나'를 들어 올리는 것이며, 이는 도핑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도핑의 강화: 성공이 반복될수록 나를 치켜 올림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되고 마음대로 되는 경험은 '나'를 들어 올리는 도핑이 된다. 한 번의 성공은 다음 성공을 위한 도핑이 되어 마음의 근육을 강화시키고, 더 큰 생각과 소원을 갖게 한다. 이는 결국 심장 벽이 얇아지고 혈관이 얇아지는 것처럼 신체적, 정신적 파멸로 이어진다. 성공하면 그게 '나'라고 착각하는 정신 착란증세가 바로 이것이다. 값비싼 물건이나 음식 앞에서 느끼는 차이 역시 자신을 치켜 올리는 도핑이 될 수 있다.
진정한 죽음: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성공과 형통이 도핑이 아닌 축복이 되려면, 완전히 깡그리 죽을 때 가능하다. 내가 죽었는지 알 수 있는 기준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거나 주어진 여건이 힘들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 은혜라고 받아들여질 때이다. 내 생각과 소원, 바람이 꿈틀거리지 않고, 지금의 상황 그대로가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죽은 것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듯, 복을 향해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십자가에서의 죽음: 도핑이 아닌 은혜의 축복
주님의 십자가에서 온전히 죽은 자에게 허락되는 모든 형통과 성공은 도핑으로 작용하여 망가뜨리는 대신, 은혜 위에 은혜로써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축복이 된다. 십자가를 붙잡고 교만해지는 것은 십자가를 붙잡은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주어진 상황 그대로에 감사할 수 있다. 이러한 죽은 자가 되었을 때라야 하나님에 의한 역사가 성공과 형통으로 우리에게 임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샤처럼 망하고 멸망할 뿐이다. 상습적인 도핑, 모든 성공과 형통은 십자가에서 내가 죽지 않는 한, 나를 치켜드는 교만으로 작용한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상습적인 도핑이 신체와 정신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은 무엇인가?
- ❓신앙생활에서 성공과 형통이 어떻게 '도핑'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
- ❓산당 신앙과 예루살렘 성전 예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 ❓자신의 생각과 소원을 죽이지 못하는 것이 왜 '나'를 들어 올리는 도핑이 되는가?
- ❓성공과 형통이 도핑이 아닌 축복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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