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23:1-30) 터미네이터 요시야

📖 왕하23:1-30시즌I_구약열왕기하-1

설교 요약

요시야, '끝내는 자'의 등장

영화 속 터미네이터처럼, 특정 명령을 완수할 때까지 물불 가리지 않고 매진하는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요시야 왕. 그의 등장은 단순히 종교 개혁을 넘어, 하나님의 예정된 진노 속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의 철저함은 인간적인 이해를 초월한다.

기적적인 개혁, 설명되지 않는 신앙

악명 높은 선조들 사이에서 여덟 살에 왕위에 올라 16세부터 종교 개혁을 시작한 요시야. 온 나라가 우상숭배와 배교 행위에 물든 상황에서 그의 신앙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듯 설명하기 어렵다. 이는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기적에 가깝다.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터미네이터'

하나님께서 유다의 멸망을 작정하신 후, 요시야를 통해 그동안 쌓아두셨던 분노를 정리하셨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우상을 뿌리 뽑고 배교 행위를 근절하는 그의 모습은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완수하는 '터미네이터'로서, 하나님의 응어리를 풀어드리는 역할을 했다.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대비

요시야의 등장은 유다가 왜 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율법책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살았다는 증거이며, 이는 하나님과의 공통점이 없음을 의미한다. 요시야의 철저한 개혁은 우리가 결코 따라 해서는 안 될 삶의 방식을 경고한다.

율법 준수와 인격적 사랑의 차이

요시야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준행'했지만, 다윗에게서 보이는 하나님에 대한 끈끈한 인격적 애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율법 준수가 반드시 하나님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진정한 율법 준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고뇌 없는 신앙, 인간적 신앙의 모습

요시야의 신앙은 고민, 좌절, 실패 속에서 하나님을 선택하려는 인간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사도 바울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와 같은 고백은 요시야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십자가를 붙잡는다고 해서 기계적으로 요시야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사명과 우리의 신앙

요시야의 신앙은 특별한 사명을 받은, 고민 없이 사명을 완수하는 '터미네이터적'이고 은사적인 삶이었다. 반면 우리의 신앙은 고뇌와 실패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선택하고 사랑을 표현하려는 인격적인 몸부림이다. 이러한 몸부림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으로서의 고뇌

우리의 좌절과 실패 속에서 하나님을 선택하는 과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격적인 주체로 존중해 주시는 증거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으로 행복하기 위한 선택은 쉽지 않기에,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된다. 우리는 요시야를 거울삼아, 고뇌 속에서 하나님을 선택하는 신앙을 추구해야 한다.

본문 도입부

열왕기하 23장 1절부터 30절까지 터미네이터 요시야 오늘 함께 읽은 말씀중심으로 <터미네이터 요시야>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Terminator’라고 하면 '끝내는 자'입니다. 영화로 여러 편이 시리즈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을 제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생물체와 기계가 합쳐진 존재가 사이보그 아닙니까? 터미네이터는 어느 하나의 명령이 입력되면 그것을 완수할 때까지 끝장을 내고야 마는 자입니다. 차가운 느낌이 들어요. 거기에 무슨 인간의 감정이 어필 될 수 없는,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 기계도 아니고 사이보그, 터미네이터의 본성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기계적인 면이 강합니다.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밥도 먹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입력되어진 명령의 완수를 위하여 매진하는 존재가 바로 터미네이터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요시야에게 그런 이름을 갖다 붙일 수가 있느냐는 궁금증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 여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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