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에서 소토로, 벌판의 분재 (렘 10:1-25(7)

📖 렘 10:1-25(7시즌I_구약예레미아-1

설교 요약

우치와 소토: 축소지향과 확대지향의 개념

일본의 축소지향적 특성은 도시락, 접이부채, 워커맨 등에서 나타난다. 이는 '우치'(안쪽, 정해진 구역)의 개념에 기반한다. 그러나 이 축소지향이 '확대지향'으로 바뀔 때 일본은 역사적으로 불행과 패망을 경험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은 이러한 확대지향으로 인한 패닉 상태의 대표적인 예이다. 우치에서 소토로 나아갈 때 판단력이 상실된다.

이방인의 길: 두려움에서 출발하는 삶

이방인의 길은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들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는데, 이는 땅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이다. 삶의 원칙과 방식의 출발점은 항상 두려움이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우상을 숭배한다. 두려움은 우상 숭배, 보험, 자기계발, 긍정의 힘 등 모든 것의 근원이다.

영적 우치와 소토: 하나님과의 거리

신앙적으로 볼 때, '우치'는 내 마음과 하나님 사이의 영역이며, '소토'는 하나님 너머의 세상이다. 이방인은 하나님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하나님과 내 마음 사이의 우치를 넘어 소토로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이다. 이는 마치 허허벌판에 놓인 분재와 같아 아름다움을 잃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하나님을 제치는 것이 가장 쉬운 죄이며, 이는 곧 두려움의 시작이다.

죄의 추진력: 내가 왕 노릇 하려는 습성

우리의 죄성은 하나님을 제치고 내가 왕 노릇 하려는 습성에서 비롯된다. 내 마음이 하나님 뒤의 소토, 즉 내 몸, 가족, 직장 등을 붙잡으려 할 때 하나님은 제쳐진다. 이것이 바로 두려움이 생기는 이유이며, 이방인처럼 우상 숭배나 점술, 전문가 의뢰 등으로 두려움을 해소하려 한다. 신앙인 역시 하나님을 제치고 붙잡은 것에서 오는 두려움을 가지고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 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니다.

우치에 머무는 신앙: 하나님을 앞세우는 삶

우치에 머무는 신앙인의 삶은 다윗의 모습에서 나타난다. 사울 왕 앞에서 옷자락을 자를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나님을 앞세워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골리앗 앞에서 떨고 있는 이스라엘 군대와 달리, 다윗은 하나님을 만나고 있었기에 평강을 유지했다. 내 마음의 관심이 하나님께 앞설 때, 우리는 하나님을 제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통해 일하시도록 맡길 수 있다.

십자가: 우치로 귀환하는 유일한 길

하나님과 내 마음 사이의 우치에 머무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죄성은 우리를 자꾸 소토로 이끌지만,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가 하나님을 제치고 소토로 들어가지 않도록 붙잡아 준다. 십자가에 마음을 머물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기억하며 다시 우치로 귀환할 수 있다.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하나님을 재끼며 소토로 들어가지 말고 우치에 머물 때,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이루어 가실 것이다.

본문 도입부

우치에서 소토로, 벌판의 분재 렘 10:1-25(7)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우치에서 소토로, 벌판의 분재’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우치에서 소토로! 우치라는 단어 소토라는 단어와 아울러 일본어입니다. 여러분 다 아시는 대로 이어령씨가 쓰신 책 중에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다시 읽어봐도 해박한 지식과 그분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책입니다. 일본인의 축소지향적 성향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 부분에 가서 이 축소지향적 특성이 확대지향으로 바뀔 때에 일본은 항상 역사적으로 불행과 패망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경고를 줍니다. 축소지향을 통해서 일본이 정말 60년대부터 시작해서 90년까지도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유럽은 일본을 대항하기 위하여 유럽공동체를 구성할 정도로 대단한 경제적인 힘을 키우게 됩니다. 그것의 핵심적인 원동력이 이어령씨 눈에는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축소지향적 특성이었다는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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