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앞잡이 (렘 27:1-22(1-4, 8-11)
설교 요약
앞잡이의 본질: 누구의 편에 서는가
채만식의 소설 <민족의 죄인>은 친일파의 문제를 다룹니다. 주인공은 생계 때문에 친일 행위를 했지만, 친구는 집안이 부유해 일본을 돕지 않아도 생계가 보장되었기에 주인공을 변호합니다. 이처럼 생계와 안위는 친일 행위의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바벨론 왕을 섬기라고 말하지만, 그는 바벨론의 앞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앞잡이였습니다. 앞잡이는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그를 위해 변호하고 옹호하는 자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민족에게 등을 돌려야만 하나님의 앞잡이가 될 수 있었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의 오류: 하나님보다 앞서는 사랑
거짓 예언자들은 성전이 건재하므로 바벨론의 침공이 없을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그들은 애국심과 민족 사랑을 내세웠지만, 그들의 거짓됨은 하나님보다 나라와 민족을 먼저 사랑하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녀, 가정, 혹은 나라를 먼저 사랑할 때, 우리는 그 대상의 앞잡이가 됩니다.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보다 가정을 먼저 마음에 품고 가정의 입장을 변호하며 기도하는 것은 가정의 앞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민족의 앞잡이가 되어 애국애족을 외쳤지만, 이는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의 본질: 천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이기 전에 천국 사람입니다. 이 땅에 살아 있는 이유는 대한민국을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안에서 하나님의 앞잡이가 되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것은 하나님의 앞잡이 노릇을 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 못하는 자녀를 위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자녀의 앞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사업이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의 앞잡이로서 **“사업아! 하나님의 뜻이 네가 망하는 거란다. 그러면 망해야지.”**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앞잡이 되기: 십자가를 통한 전환
우리는 종종 내 가정, 내 자녀, 내 사업의 앞잡이가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선민들의 죄악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앞잡이가 되기를 원해야 합니다. 답은 주님의 십자가 복음에 있습니다. 자녀에 대한 걱정이 생길 때, 사업에 대한 위기의식이 들 때, 그 순간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비참한 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세상의 앞잡이가 되는 상태에서 죽고, 하나님의 앞잡이로서 하나님을 만나 하늘의 평강을 얻게 됩니다.
십자가를 통한 삶의 변화와 축복
하나님의 앞잡이가 된다는 것은, 내 몸에 대해서조차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입장을 변호하고 대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들을 행하게 됩니다. 채만식의 소설 주인공은 친일파가 아니라 가족의 생계, 나 자신의 생사를 위한 앞잡이였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보다 앞서는 사랑을 버리고, 십자가를 통해 세상의 앞잡이 노릇을 끝내고 하나님의 앞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오늘의 번제를 드리듯, 십자가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앞잡이로 살아갈 때, 우리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하나님의 복된 계획이 나타날 것입니다. 불평 없이 인내하라.
본문 도입부
전문 읽기와 AI 질문은 앱에서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3개 언어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