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로 얼굴 닦인 기분 (렘 7:1-34(7)

📖 렘 7:1-34(7시즌I_구약예레미아-1

설교 요약

어느 유명 드라마 작가가 동성애 언약식 장면 촬영을 거부당하자, 성당을 향해 “더러운 젖은 걸레로 얼굴 닦인 기분”이라고 토로한 사건은 오만방자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의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악을 미화하려는 시도이며, 주객이 전도된 영적 상태를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병정들에게 모욕당하시던 모습이 연상될 정도로, 이러한 시대의 영적 타락은 교회의 책임이자 말씀 사역자들의 부덕함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현실 앞에서 가슴을 칠 뿐입니다.

성전이 도둑의 굴혈이 된 이유

예레미야 시대 유다 백성들은 성전 안에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습니다. 므낫세 왕은 성소에 아세라 목상을 들여놓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교회 역시 영적으로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과 행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지 못하고, 압제하며, 거짓말에 의존하고, 도둑질, 살인, 간음, 거짓 맹세, 바알 숭배 등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행위를 일삼기 때문입니다.

제사, 축복을 사들이는 수단으로 전락하다

희생 제사와 번제를 드리는 행위가 한국식 제사처럼 변질되었습니다. 조상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복을 비는 것처럼, 하나님께 제물을 바쳐 원하는 형통과 번영을 사들이려는 거래적 신앙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후 제사보다 율법과 명령의 순종을 먼저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 순종은 빼버리고 복만을 남겨, 제사를 통해 복을 얻으려 했습니다. 이는 성전이 하나님과 거래하는 장소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성전의 본질: 죽음과 자기 부정의 역사

성전은 본래 죄악된 삶을 돌아보며, 양처럼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붙들어 달라고 간구하는 죽음과 자기 부정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완악한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 계획과 바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삶의 그릇됨을 평가 없이 성취를 위한 방법으로 변질시켰습니다. 이는 성전이 도둑의 굴혈로 전락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죄를 무서워하지 않는 영적 타락

죄를 짓고 번제를 드리면 죄가 사해진다는 반복적인 경험은 죄 자체를 무서워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죄 짓고 번제 드리는 것이 반복되면서 죄에 대한 아픔이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거래하는 장소로 바뀌어, 죄에 대한 문제는 아예 빠져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죄악이 합리화되고 정당화되며, 심지어 죄를 지은 자들이 높은 자리에서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복음마저도 죄 사함을 위한 기능적 요청으로 오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방향 전환: 진정한 '날마다 죽는 삶'

사도 바울의 ‘날마다 죽는 삶’은 하나님을 향하는 삶입니다. 내 마음의 악한 꾀와 완악함으로 인해 하나님으로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주어지는 대로 감사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죄악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하나님만으로 행복해하는 사랑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돈, 건강, 자녀 성공 등 세상적인 축복을 향해 마음이 향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등지게 됩니다. 축복은 하나님을 향해 있을 때 등 뒤를 따라와야 합니다. 진정한 죽음은 돈이나 세상적인 것으로 기뻐해야 한다는 마음 상태를 바꾸고, 내 옆에 계신 하나님으로 기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갈증의 이유를 하나님으로 해소하려는 방향 전환이 필요합니다.

아픔을 안고 십자가를 붙잡는 기도

하나님을 향해 가면서도 내 속에서 솟아나는 죄의 샘물 때문에 좌절할 때,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아파하며 용서를 비는 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후 울었던 것처럼, 죄악된 모습과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충돌할 때 눈물이 납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 세리의 기도가 더 맞다고 하신 것처럼, 죄인임을 아파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지만 죄로 인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아픔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이 아픔을 안고 십자가를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하는 길입니다. 죄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순간,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며, 여호와의 성전은 여호와의 성전이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진정한 사유하심과 축복은 이 죄의식을 간파하시고 붙잡으신 주님의 십자가를 향해 갈 때 임합니다.

본문 도입부

걸레로 얼굴 닦인 기분 렘 7:1-34(7)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걸레로 얼굴 닦인 기분’ 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정확하게 말을 하면 그냥 더러운 걸레로 얼굴 닦인 기분이다. 어느 유명한 작가가 어느 인터뷰 중에 한 말입니다. 모 방송국에서 하는 드라마가 동성애를 주제로 한 그런 드라마입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저는 그냥 이 인터뷰의 기사 내용을 봤을 뿐입니다. 그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제주도에 있는 어느 성당에서 촬영하기로 계획이 잡혔던 모양입니다. 그 촬영 장면 내용이 뭔고 하면 성당에서 동성애자들이 두 남자가 마치 남녀가 결혼식을 하는 것같이 언약식하는 장면을 찍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촬영 장소로 허락했던 이 제주도에 있는 성당에서 미처 그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던지 뒤늦게 촬영하려는 내용이 동성애자들의 언약식인 것을 알고 완강하게 촬영을 거부했던 모양입니다. …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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