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어야할 장막, 쳐야할 장막 (예레미야 23:1~40)
설교 요약
거짓의 장막: 하나님을 가리는 장막
우리의 삶에는 반드시 걷어내야 할 장막이 있고, 쳐야 할 장막이 있습니다. 걷어내야 할 장막은 우리의 삶을 거짓되게 만들고 하나님을 보이지 않게 하는 장막입니다. 이러한 거짓의 장막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과 감사를 누릴 수 없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평안하리라고 말하지만, 이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거짓된 약속입니다. 사업이 잘 안 되어 걱정하는 장로님에게 '사업이 잘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삶의 현장으로 마음이 넘어간 상태에서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감한다면 내 마음은 항상 하나님께 고정될 수밖에 없으며, 삶의 현장에 대한 판단과 계획은 설 자리를 잃습니다.
하나님 멸시의 증거: 삶의 현장으로 향한 마음
마귀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장막을 쳐서 우리가 하나님을 첫 번째 살아계신 현실로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이 장막에 가로막히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삶의 현장을 향하게 됩니다. 스스로 삶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을 멸시한 결과이며, 이는 거짓된 마음의 증거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나 설교는 거짓이 됩니다. 목사님들이 '교회에 충성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이라는 식의 설교를 한다면, 이는 거짓 선지자의 말이며, 교인 역시 거짓 교인이 됩니다. 마음이 완악한 자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삶에서 하나님의 위치를 멸절시킨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회의 참여: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느끼는 것
우리는 하나님의 회의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는 선지자들에게만 허락된 권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물리적인 하늘이 아닌, 우리 마음속까지 들어오시는 차원에 계십니다. 이 하늘에 참여하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하나님을 제일 우선적인 대상으로 느끼고 체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한 부분도 예외 없이 판단하시고 이끌어 가심을 알 때, 우리의 마음은 삶의 현장에 간섭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삶의 현장으로 마음을 돌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쳐야 할 장막: 세상을 가리는 하나님의 장막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육체의 삶의 현장에서 장막이 되셔야 합니다. 베를린 장벽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세상 사이에 장막이 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삶의 현장으로 넘어갔기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있어야 할 것은 삶의 현장에 대한 걱정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세상에 대해 죽고, 십자가의 장막 안쪽에서 하나님께 머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십자가 장막 안에서 내 마음의 기쁨과 행복의 문제를 하나님으로 끝장을 낼 때, 우리는 더 이상 세상에 대해 바랄 것이 없어지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십자가 생활화: 거짓 장막을 걷고 하나님의 장막을 치는 삶
걷어내야 할 장막은 하나님을 가리는 장막, 즉 나의 주체성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생각할 때 하나님을 멸시하게 됩니다. '아내가 나한테 이렇게 대하면 안 되지'라는 생각은 하나님을 지나쳐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붙잡고 삶의 현장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붙잡지 않으면 하나님을 가리는 거짓 장막에 의해 삶은 세상으로 미끄러지게 되고, 모든 생각과 말은 거짓이 됩니다. 십자가가 나의 마음과 세상을 가르는 담이 되도록 십자가 생활화를 이어나가야 합니다. 거짓 장막을 걷어내고 하나님의 장막을 침으로써 참된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하나님을 멸시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의미하나요?
- ❓삶의 현장에 대한 걱정이 왜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가 되나요?
- ❓하나님의 회의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참여할 수 있나요?
- ❓십자가를 붙잡는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나요?
- ❓거짓 장막을 걷어내고 하나님의 장막을 친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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