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아닌 은혜가 생의 추진력 (예레미야 8:1~22)
설교 요약
욕심의 본질: ‘바차’
우리는 삶의 추진력을 목표에서 얻는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은혜로 추진되는 삶을 말합니다. 이는 내가 추진하는 일이 없이 인생이 저절로 나아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삶이 아닌 것은 모두 욕심이며, 히브리어 ‘바차’는 이러한 욕심을 나타냅니다. ‘바차’는 전체에서 일부를 잘라내어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을 의미하며, 세상 만물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망각하고 특정 부분을 취하려는 행위입니다. 이는 곧 도둑질과 같습니다.
죽음을 향한 자발적 갈망
예레미야는 멸망당한 유다 백성의 뼈가 무덤에서 끌려 나와 능욕당하는 참혹한 광경을 묘사합니다. 이는 그들이 사랑하고 섬기던 신들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성들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는 절망적인 소원을 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선민은 삶이 편안할 때, 즉 자발적으로 죽음을 생각하며 세상에 대한 마음이 죽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서 가장 먼저 무덤을 산 것은 이러한 죽음을 향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하나님 사랑을 위한 세상에 대한 죽음
신명기 6장은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라고 명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면 세상에 대한 여분의 마음과 뜻, 힘이 남지 않게 됩니다. 이는 세상에 대해 마음이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얻는 땅, 성읍, 집, 우물 등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께 마음을 다 쓴 결과 세상 문제에 사용할 마음의 잔고가 없는 자이며, 이들이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거짓된 지혜와 ‘평강’의 허상
선민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온갖 지혜를 동원하지만, 세상 것을 얻으려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음이기에 그 지혜는 참되지 않습니다. 또한,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며 ‘평강하다, 평강하다’ 외치지만 참된 평강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일부를 끊어내려는 욕심(바차)을 인정하고 권유하는 거짓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추진력, 세상에 대한 죽음
인간은 유일하게 무한대로 가질 수 있는 하나님만을 유일한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만족은 무한하고 영원하지만, 세상의 만족은 일시적입니다. 하나님을 갖기 위해서는 보이는 세상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삶의 추진력을 하나님을 향해 사용할 때, 세상에서의 삶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저절로 이루어져 갑니다. 이는 하나님이 본래 계획하신 인간의 삶입니다.
십자가 생활화: 세상에 대한 자발적 죽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찔러 쪼갭니다. 우리의 근면함, 성실함, 노력은 오히려 삶을 거짓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세상 것을 얻으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월성신을 섬기던 마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추진력은 십자가 생활화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 죽어서 하나님만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할 때,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마음만이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하나님 아버지께로 향할 수 있습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바차’라는 욕심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의미하나요?
- ❓삶의 목표가 아닌 은혜로 사는 삶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한가요?
- ❓세상에 대해 죽는다는 것이 단순히 포기하거나 체념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요?
- ❓하나님을 향한 추진력과 세상에 대한 죽음이 어떻게 연결되나요?
- ❓십자가 생활화는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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