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큰 것 (나훔 1:1~15)
설교 요약
욕망과 비움의 착각
사람은 무언가를 갖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며, 이는 결핍감을 동반합니다. 명품백을 갖고 싶지만 돈이 없는 경우, 결핍감은 마음을 지배합니다. 욕구를 억누르거나 제거하면 결핍감도 사라지지만, 이를 '충만함'으로 착각하는 것은 불교의 공사상에서도 나타나는 큰 오류입니다. 텅 빈 상태는 텅 빈 상태일 뿐,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본성은 욕구가 없는 상태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채워지기 위한 존재이기에,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비움의 미학, 그 이면
원죄로 인해 인간은 채워서는 안 되는 것으로 마음을 채우려다 괴로워졌습니다. 이로 인해 '아예 채우려 하지 말라'는 권고가 나왔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계시받지 못한 인간의 최선의 지혜일 수 있으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지혜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소유하지 못한 자는 진정한 채움을 경험할 수 없기에 비움의 미학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비움의 미학이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레오노라가 원했던 세상에서 가장 큰 상자이며,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마음의 가장 큰 상자
우리는 평생을 소모하여 '제일 큰 상자'를 찾아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상자는 바로 우리 마음이며,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이 들어오셔야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애인이,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사업이 가장 큰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상이 사라지면 마음은 채울 거리를 잃고 허탈감에 빠집니다. 그러나 선민에게는 기쁜 소식이 주어졌습니다. 가장 크신 하나님께서 마음을 진정으로 채울 수 있는 대상으로서 자신을 제공하셨다는 것입니다.
앗수르와 하나님의 크기
나훔 선지자 시대의 남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보다 앗수르를 더 큰 존재로 여겼습니다. 앗수르는 당시 중근동의 패권국가로서 잔혹함과 무법함으로 유다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앗수르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라는 말씀처럼, 선민에게 있어서 아름다운 소식은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크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앗수르가 큰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앗수르를 제일 크게 여겼기에 선민들의 마음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정한 채움의 시작
어떤 순간이든,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이 제일 크시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인정하기만 하면 삶은 저절로 풀려나갈 것입니다. 몸에 암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보다 클 수는 없습니다. 사업이 망해도, 몸에 병이 나도 잃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세상에서 제일 큰 상자이기에, 사업이나 건강은 애초에 우리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상자인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대상은 세상에서 제일 크신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십자가, 모든 대상에 대한 죽음
원죄로 말미암아 우리는 세상의 사소한 문제들을 크게 여깁니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몸에 병이 나거나, 돈이 없는 것 모두 앗수르와 같은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본래 건강도 돈도 제일 큰 상자인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 외의 모든 대상에 대해 죽었음을 인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크지 않은 것들을 자꾸 크게 보려고 할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고, 세상에서 제일 큰 여러분의 마음을 세상에서 제일 크신 하나님으로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인간의 욕구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
- ❓비움의 미학이 진정한 충만함을 가져다주는가?
- ❓우리 마음의 가장 큰 상자는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 ❓하나님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세상의 대상들은 무엇인가?
- ❓십자가는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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