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도 평안은 없는 이유 (스바냐 3장 1절~20절)

📖 스바냐 3장 1절~20절시즌II_구약요엘~말라기-2

설교 요약

사랑의 본질과 평안의 부재

우리가 경험하는 사랑은 왜 늘 평안 대신 슬픔과 수고로움을 동반할까요?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자녀, 돈, 건강 등 모든 종류의 사랑에서 안식이 없는 이유는 바로 채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서 채워짐을 기대하지만,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평안은 사라지고 괴로움만 남습니다. 이는 마치 조용필 씨의 노래처럼, 아름다워야 할 사랑이 눈물과 고통의 씨앗이 되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안식의 부재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며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이유 역시 하나님의 사랑에 평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지만, 인간의 패역함과 더러움, 포학함 때문에 안식을 누리지 못하셨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의 잘못으로 인해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 역시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노심초사하셔야 했습니다. 이는 곧 우리 삶 전반에 평안이 임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됩니다.

'모르아'와 하나님의 심판

스바냐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모리아 산을 염두에 두고 '모르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인간의 배반을 지적합니다. 이는 하나님만을 좋아하도록 창조된 인간이 타락하여 돈, 자녀, 외모, 권력 등 다른 것을 하나님 자리에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배반은 마음의 더러움과 이웃에 대한 포학으로 이어지며, 결국 하나님의 공의에 따른 심판을 초래합니다. 아침마다 드려진 어린양의 상번제는 이러한 죄악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기회였으나, 인간은 이를 외면했습니다.

십자가, 평안의 유일한 길

하나님께서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기 위해서는 인간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어로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는 **'너의 사랑 안에서 안식하시며'**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안식을 누리지 못하셨던 과거와 달리,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릴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이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주어집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나의 죽음을 대신하셨음을 믿고, 세상에 대한 죽음을 지속할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안식을 누리시며 우리를 기뻐하실 수 있습니다.

십자가 생활화와 회복

하나님께서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상황은 우리가 십자가를 삶의 첫 번째 현실로 받아들일 때 가능합니다. 세상에 대한 죽음을 지속하며 배반과 패역의 삶에서 벗어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기쁨을 누리시고 안식 가운데 사랑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에 주어진 모든 관계에 구원과 평강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결과로 하나님의 사랑에 평안이 없었던 것처럼, 이제 십자가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하고 십자가에서 죽은 자임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삶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스바냐 3장 1절~20절)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사랑해도 평안은 없는 이유>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사랑해도 평안은 없는 이유’ 여러분께서는 사랑은 해도 평안이 없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아무리 사랑을 해도 평안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실질적 경험을 토로할 뿐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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