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뒤따르는 공포의 터미네이터 (계14:13~20)
설교 요약
나를 죽이는 행위의 실체
모든 사람에게는 끝까지 따라와 결국 비참하게 죽게 만드는 공포의 터미네이터가 있습니다. 이는 외부의 재앙이나 살인범보다 무서운 것으로, 바로 내가 행한 나의 행위입니다. 살인범은 육체만 죽이지만, 나의 행위는 죽음 이후에도 나를 따라와 영혼까지 죽입니다. 가장 무서운 적은 외부가 아니라 바로 나의 과거 행위입니다.
진노의 포도주와 음행
성경은 심판의 과정을 포도주 틀에 비유합니다. 큰 성 바벨론이 심판받는 이유는 모든 나라에 음행을 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음행은 하나님 외의 다른 대상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으려 추구하는 모든 행동과 말을 의미합니다. 내 마음의 빈 공간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할 때, 그것은 우상숭배이자 음행입니다. 이러한 음행의 행동들이 바로 나를 죽이는 터미네이터가 됩니다.
기쁨의 추구와 그 함정
인간은 본능적으로 기쁨을 추구합니다. 돈, 성공, 관계 등에서 기쁨을 얻으려 합니다. 이러한 대상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말하고 행동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고 나를 따라옵니다. 하나님 외의 다른 대상이 기쁨을 줄 것이라고 믿고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추구하는 모든 것이 음행이며, 이 음행이 결국 나를 죽음으로 이끄는 터미네이터가 됩니다. 지금 기쁘지 않은 이유가 돈, 건강, 물질 등 하나님 외의 것 때문이라면, 우리는 이미 음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의 복
성경은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단순히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삶을 살다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린 양을 따라가는 삶은 곧 믿음의 삶이며, 이 삶 속에서 행한 행동들은 터미네이터가 아닌 복의 후견인이 됩니다. 어린 양을 따라가는 것은 돈, 성공 등 세상의 목적을 쫓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에 대해 죽고 하나님만을 기쁨의 원천으로 삼는 것입니다.
어린 양을 따르는 삶
어린 양을 따라가는 것은 매 순간 십자가를 통과하는 삶입니다. 돈 때문에 걱정될 때 돈을 쫓는 것이 아니라, 그 걱정에 대해 죽고 십자가를 쫓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대해 마음이 죽을 때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행한 말과 행동만이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는 후견인이 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 '긍정의 힘'과 같은 세상의 가치를 쫓는 것을 회개하고, 오직 어린 양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추수를 위한 존재의 의미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는 세상에서 성공하거나 대단한 일을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내기하신 벼가 추수를 위해 존재하듯, 우리는 추수될 수 있는 익은 곡식이 되기 위해 존재합니다. 내 인생의 절정은 죽음과 함께 추수될 때 이루어집니다. 추수될 수 있는 자는 어린 양을 따라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 죽음으로써, 그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복을 추천하는 후견인이 되는 자입니다. 그렇지 못한 자들은 심판의 포도주 틀에서 짓이겨질 것입니다.
회개와 어린 양 따라가기
우리의 행동이 나를 죽이는 터미네이터가 될 것인지, 복의 후견인이 될 것인지는 어린 양을 따르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의 목적이나 유행을 쫓는 삶을 회개하고, 매 순간 마음의 기쁨 상태를 살피며 어린 양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어린 양은 십자가로 가시며, 십자가를 통과한 뒤의 삶이 우리를 하나님의 복으로 이끌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나를 죽이는 '공포의 터미네이터'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 ❓'주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살아야 그렇게 죽을 수 있나요?
- ❓하나님 외의 다른 것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 왜 '음행'이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나요?
- ❓나의 '행한 일'이 어떻게 나를 죽이는 터미네이터가 되거나 복의 후견인이 될 수 있나요?
-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며, '추수'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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