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히 오신다더니 말을 실수하셨나? (계 22:6~15)
설교 요약
'속히'의 재해석: 시간 아닌 태도
예수님께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천 년이 지나도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자 많은 해석이 분분했습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철저 종말론'은 예수님께서 재림을 급박하게 생각하셨기에 나온 말씀이라고 보았지만, 이는 예수님의 말씀 자체의 진리성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진리 우선의 원칙에 따라, 예수님의 말씀은 결코 실수나 편견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우리는 '속히'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속히'의 본질: 오직 예수님께 집중하는 삶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속히'는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를 겨냥하는 표현입니다. 마치 지하철이 들어올 때 주변 광고에 신경 쓸 겨를 없이 달려가듯, 우리는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다른 것에 신경 쓸 시간이 없어야 합니다. 이는 자기-주권의 죽음을 통해 가능하며,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24장 42절의 "깨어 있으라"는 말씀과 같이, 항상 주님에 대해 의식이 깨어 있는 것이 바로 '속히'의 의미입니다.
어린 양의 복: 십자가 연합과 그 결과
사도 요한이 천사 앞에 무릎 꿇으려 했던 이유는 '복이 있으리라'는 말씀에 담긴 어린 양 예수님의 복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오실 예수님과의 연합, 그리고 그로 인한 천년 왕국 공생애의 삶을 의미합니다. 이 복은 단순히 바라기만 해서는 얻을 수 없으며, 진심으로 원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의 것이 됩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이 복을 등졌기에 깨끗해짐이 없으며,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상급
예수님께서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선행에 대한 보상이 아닙니다. 이는 '속히 오리라'는 말씀과 연결되어, 예수님을 만날 준비 외에는 딴짓할 시간이 없다는 태도로 살아가는 모든 말과 행동이 상 받을 일임을 의미합니다. 십자가 예수님과의 밀착은 믿음이며, 이 믿음의 상태에서 나오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상급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 연합의 반복: 하늘 보좌와의 결합
재림 예수님을 만날 준비는 십자가 예수님과의 결합을 날마다 반복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십자가 예수님을 붙잡고 가정과 직장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는 곧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를 바라보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떨어지지 않고 결합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상을 준비하시는 진정한 삶입니다.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의식
예수님의 "내가 속히 오리니"라는 말씀은 앞으로 얼마나 살든 매 순간 적용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의식을 분명히 세우고, 오직 예수님을 따라서 하늘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믿음이며, 이 믿음의 삶을 통해 우리는 재림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제대로 된 모습으로 설 수 있습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예수님의 '속히 오신다'는 말씀은 왜 이천 년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나요?
- ❓'속히'라는 단어가 시간적 의미가 아니라 태도를 의미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나요?
- ❓십자가 생활화는 어떻게 '속히'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 ❓어린 양의 복이란 무엇이며, 이 복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상급은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받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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