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키 본 뒤 설악 (요8:48~59)
설교 요약
'정상'의 기준이 뒤바뀌다
신앙인이 세상 사람들에게 '정상'으로 보인다면, 그것이야말로 심각한 이상 신호입니다. 마치 라인강과 세느강을 본 사람이 한강을 볼 때, 혹은 그랜드캐니언과 로키산맥을 본 사람이 설악산을 볼 때 느끼는 이질감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세상의 기준과 다른 시각을 갖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사마리아 사람'이나 '귀신 들렸다'고 비난했던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먼저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내 마음의 스포트라이트가 오직 하나님께만 비추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희미해지고 하나님만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셨기에, 유대인들이 볼 때는 그들의 현실이 마귀의 종노릇하는 상태로 보였고, 이는 그들에게 극히 이상하게 여겨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보고 세상을 바라볼 때, 경제적 어려움이나 죽음과 같은 현실이 전혀 다르게 해석됩니다. 하나님을 먼저 보는 것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꿉니다.
십자가 연합과 죽음의 소멸
예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십자가 사건에서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연합을 통해 우리는 죽음의 존재감을 제로로 만들 수 있습니다.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먼저 보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죽음이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자 밥이 되어도 찬양하며 죽는 모습은 네로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시간의 제약을 넘어서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셨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과 연합한 우리는 시간의 제약을 넘어섭니다. 우리의 마음이 시간 바깥의 세상, 즉 하나님께 머물게 될 때,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우리를 흔들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을 변론하는 대신 예수님을 증거했을 때, 베스도 총독은 그를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생사 문제보다 예수님을 먼저 보았기에, 시간의 제약을 넘어선 진리를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정상'을 거부하는 삶
주님과 연합한 자는 왕 앞에서도, 대통령 앞에서도 '나처럼 되지 않으면 불쌍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이는 분명 '미친 짓'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주님과 연합한 자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정상적으로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영생은 지금, 시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며, 죽음의 의미가 마음에서 제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을 먼저 보고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세상의 '정상'을 거부하는 비정상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이상해 보이는 삶의 목적
우리의 삶의 목적은 세상 사람들에게 정상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기준에서 볼 때 이상해 보이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라인강과 세느강을 보고 한강을 보듯, 그랜드캐니언과 로키산맥을 보고 설악산을 보듯, 하나님이 먼저 우리 마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절대적으로 이 세상의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이상해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생활화의 참된 의미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왜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여야 하나요?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 ❓십자가 연합을 통해 죽음의 존재감이 제로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 ❓시간 바깥으로 나간다는 것은 현실 도피인가요,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나요?
- ❓세상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이는 삶이 정말 우리의 목적이 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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