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눈물 다른 의미 (요11:17~37)

📖 요11:17~37시즌I_신약요한복음-1

설교 요약

예수님의 눈물, 그 비통함의 실체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 때, 예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은 나사로의 죽음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여기서 '비통히 여기셨다'는 것은 격렬한 불쾌감을 표현하는 것이며,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은 마음이 동요되어 우신 것입니다. 이 격렬한 불쾌감은 마귀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가 사람들을 종으로 삼는 현실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별의 의미, 세상에 묶인 슬픔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이유는 이별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세상에서 사랑하는 나사로가 떠났기에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신 이유는 다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묶여 있었기에, 하늘을 떠나 이 세상에 머물고 있는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는 이별이었습니다. 즉, 그들이 세상에 묶여 있는 것이 곧 하늘을 떠난 죽음이었기에 예수님은 우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은 이를 '세상을 떠났다'고 하지만, 예수님께는 하늘을 떠난 것이 죽음이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자신을 가리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가 고백하는 '내가 죽었다'는 것은 이 세상에 대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늘에서 볼 때 세상에 마음을 묶여 머무는 것이 죽음인데,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 죽었다는 것은 곧 죽음에 대해 죽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부활이고 생명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는 것은 실제로는 부활이고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죽음의 극복

예수님의 눈물은 우리가 세상에 마음을 묶여 하늘을 떠난 '죽음' 상태에 있음을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죽음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세상에 대하여 죽고 세상이 우리에 대하여 죽은 것입니다. 하늘을 떠난 죽음을 십자가에서 죽이고, 죽음을 죽였으므로 부활하고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이는 종말론적인 부활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는 그 자체가 이미 부활이요 생명임을 선언하는 사건입니다.

하늘로 복귀된 삶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에 마음을 묶여 있는 죽음에 대해 죽음으로, 부활하시고 생명을 얻은 자로서 하늘로 복귀된 자로서 이 땅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있을 때 얼마나 좋은 하늘인지, 얼마나 만족스러운 하늘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늘을 떠나 죽은 자들임을 알고, 세상을 떠난 자를 슬퍼하는 이들을 보며 울고 계시는 주님의 마음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하늘로 복귀된 자로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나사로가 장사된 무덤 앞에서 마리아도 울고 조문객으로 온 유대인들도 울고 마침내 예수님께서도 우셨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을 확인한 유대인들은 생각했습니다. 참 나사로를 많이 사랑했었나보다고. 사랑하셨음은 맞는 말이지만 나사로의 죽음이 예수님의 눈물의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고인의 무덤 앞에서 고인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면 대체 예수님은 왜 우신 것이었을까요? 같은 눈물 다른 의미 (요11:17~37)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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