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은 부부만 한다 (요19:1~16)
설교 요약
부부만의 특권, 이혼
이혼은 부부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며, 이는 마치 하나님을 미워하고 죽이려는 시도가 선민만의 우려스러운 특권이라는 점과 유사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죽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죽인다는 것은 삶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몰아내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오직 하나님을 계시받은 선민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삼자 구도와 빌라도의 딜레마
본문은 빌라도, 유대인 지도자들, 그리고 예수님이라는 삼자 구도를 보여줍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려 했으나, 유대인들은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며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왕이신 예수님을 거부하며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셨을 때, 선민이 받아들이거나 죽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죽이는 선민
선민이 하나님을 미워하고 죽이려 하는 이유는 자리싸움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 이는 세상의 삶에 대한 염려 대신 하나님께서 직접 신경 쓰시겠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러나 선민이 여전히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소원하며 판단할 때, 이는 하나님을 삶의 자리에서 몰아내는 행위, 즉 하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모르기에 하나님을 죽일 수 없지만, 선민은 하나님을 계시받았기에 하나님을 적대할 수 있습니다.
자리싸움의 본질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버지로 계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소원할 때, 이는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를 침범하는 것입니다. 자동차, 돈, 집과 같은 사물이나 사람과의 만남, 주어진 상황에 대해 나로부터 시작하는 생각과 판단, 소원과 바람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을 죽이는 행위입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모르기에 이러한 죄를 짓지 않지만, 선민은 하나님을 알기에 이러한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하나님을 죽이려 했던 사건은 역설적으로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이룰 수 있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각, 판단, 소원, 바람을 죽일 때,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신경 쓰시며 우리 삶을 인도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자신과 함께 죽는 것을 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신경 쓰면, 하나님을 죽이는 것이 되어 **인생은 ‘도’**가 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날마다 죽으면, 모든 삶이 하나님의 신경 쓰심 안에서 유지되는 **‘모’**의 삶이 됩니다.
선택: 도 아니면 모
선민에게는 ‘도’ 아니면 ‘모’의 삶이 주어집니다. 이방인들은 개와 걸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지만, 선민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여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모’의 삶, 즉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계획과 뜻으로 채워지는 은혜를 누립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놓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신경 쓰면 ‘도’의 삶, 즉 개와 걸은커녕 ‘도’만 나오는 인생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도’로 일관할 것인가, ‘모’로 일관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하나님을 '죽인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 ❓이방인들은 왜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죽일 수 없나요?
- ❓선민이 하나님과 '자리싸움'을 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을 말하나요?
- ❓'도'와 '모'의 삶은 각각 어떻게 구분되며, 어떻게 '모'의 삶을 살 수 있나요?
-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이는 것이 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으로 이어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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