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여행 (요20:1~10)
설교 요약
'나'를 찾는 열망과 불교의 한계
템플스테이의 모토인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인간의 깊은 열망을 보여줍니다. 불교는 수천 년간 ‘참된 나’와 ‘마음’에 집중해왔지만, 기독교의 관점에서 볼 때 참된 나는 불가능합니다. 불교적 수행으로는 본래의 청정무구한 마음을 깨칠 수 없습니다. 반면, 참된 나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가진 기독교는 세속적 가치를 쫓느라 이탈하고 있습니다. 이는 답답한 현실입니다. 참된 나는 오직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어지는 코스에서만 찾아집니다.
십자가스테이: 거짓된 나와 참된 나의 분별
주님과 함께 죽고 부활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은 거짓된 나의 삶입니다. 엄마 노릇, 남편 노릇, 사장 노릇 등 모든 역할이 거짓된 자아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템플스테이로 얻는 마음의 평온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 거짓된 나의 활성화가 잠시 멈춘 것에 불과합니다. 사도 바울의 ‘날마다 죽는다’는 고백은 거짓된 나가 죽고 참된 나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참된 나는 십자가스테이, 즉 크로스스테이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유아독존'의 비극
석가모니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지만, 불행한 고아의 절규와 같습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도록 창조된 ‘하나님 관계 맞춤형 피조물’입니다. ‘오직 나만 있다’는 말로는 인간의 참된 모습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죄가 들어오면서 하나님이 아닌 돈, 아내, 자식 등 다른 대상을 처음으로 관계하게 되었고, 이 첫 번째 관계에서 마음의 상태가 결정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과의 첫 관계에서 오는 절대 평강 대신, 세상의 것으로부터 오는 일시적인 만족에 빠지게 됩니다.
거짓된 나의 실체와 불교의 오해
하나님을 처음으로 관계하지 않는 나는 모두 거짓된 나입니다. 자식이나 배우자에게 홀딱 빠져있는 모습은 마귀의 유혹과 죄악 때문에 생긴 ‘나’입니다. 불교는 이 ‘거짓 나’를 인지하고 ‘청정무구한 마음’을 추구하지만, 여기서 ‘청정함’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마음에 있어야 할 대상, 즉 하나님이 없는 상태는 본래의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으실 때의 본래 상태는 하나님만으로 마음에 가득 찬 상태였습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거짓된 나의 소멸과 참된 나의 회복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거짓된 나가 죽게 하시려고입니다. 주님의 철저한 죽음은 세상에 대한 어떤 것도 마음에 갖지 않는 진짜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 죽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납니다. 부활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역으로, 죽으신 주님을 살리심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의 첫 번째 만남, 즉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본래의 모습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처음으로 살아나 하나님을 만나는, 오리지널 한 모습입니다.
부활의 두 가지 의미: 종말론적 약속과 현재적 삶의 방식
부활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는 종말론적인 약속으로, 주님 재림 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입니다. 둘째는 현재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이 삶의 방식을 통해 참된 나를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처음으로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엄마, 아내, 직장인, 사업가로서 살아갈 때, 그것이 바로 참된 나로서의 삶입니다. 이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이 참된 나로서의 삶을 통해 감격하고 감사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참된 나와 거짓된 나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 ❓불교의 템플스테이가 참된 나를 찾는 데 한계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십자가스테이가 참된 나를 찾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간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 ❓부활의 약속과 현재적 삶의 방식으로서의 부활은 각각 무엇을 의미하나요?
전문 읽기와 AI 질문은 앱에서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3개 언어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