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접하면 ‘우리’ ‘나’ ‘삶’이 확 바뀐다 (요한복음 1:35~51)
설교 요약
예수님을 향한 고정된 의식
세례 요한은 자신을 소개할 때 예수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의 의식은 예수님께 고정되어 있었기에, 산헤드린공회의 파견단과의 대화는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을 제대로 이해시키려 한다면, 예수님을 제대로 영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나를 규정하는 대상을 예수님께 두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처럼,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눈은 사람을 보고 귀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도, 의식은 예수님께 꽂혀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한 자기 규정
우리가 영접해야 할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입니다.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나를 규정해야 합니다. 사장 앞에서 직원이기에 앞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의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가시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을 떠올리며 “나는 주님과 함께 머리를 쓰지 못하는 죽은 자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당 안에서 예배드린다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누구냐”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님에 의해 규정된 나를 대답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 개념의 혁신적인 변화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라는 개념이 혁신적으로 바뀝니다. 이전에는 가족, 나라, 지구가 ‘우리’의 범위였다면,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예수님은 성령님과 하나님과 하나 되셨기에, ‘우리’는 나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위가 됩니다. 이러한 ‘우리’ 개념 속에서 배우자, 자녀, 나라, 지구를 쫓아낼 때, 비로소 그들을 위해 가장 큰 기여를 할 준비가 된 사람이 됩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묶여야 서로를 살리는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나'의 발견과 새로운 삶
예수님을 영접하면 ‘나’가 바뀝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게바(베드로)’라 부르시며, 육체의 아버지 요나의 아들로서의 삶은 끝났음을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까지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알지 못합니다. 죄악에 찌든 가짜 나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대입하여 죽이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할 때 비로소 진정한 나를 찾게 됩니다.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하나님과의 참된 만남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늘을 향한 추구 방향의 전환
나다나엘을 향한 예수님의 평가는 ‘간사함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복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이기려 했지만, 예수님을 영접하면 간사하고 하나님을 이기려는 삶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 나를 대입하면 하늘로 올라가게 되고,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간사한 마음으로 땅의 복을 추구하던 삶은 종식되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삶의 현장에서의 예수님 영접
우리는 세례 요한처럼 사람들 속에서 나를 규정하는 상대로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나를 대입시켜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해야 합니다. 사람들 속에서 예수님을 통해 고집스럽게 나를 규정해나갈 때, ‘우리’가 바뀌고 ‘나’가 바뀌고 ‘삶’이 바뀝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 영접함을 통해 날마다 ‘우리’와 ‘나’와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 ❓나를 규정하는 대상이 예수님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우리'라는 개념이 예수님 중심으로 바뀐다는 것은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 ❓진정한 '나'를 찾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가능한가?
- ❓야곱의 이야기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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