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눈, 뭉치면 죽고 나뉘면 산다 (요한복음 9:35~41)
설교 요약
세 개의 눈, 겉과 속의 시력
사람에게는 겉으로 보는 육체의 눈과 더불어 속으로 보는 두 종류의 눈, 즉 존재를 의식하는 눈과 좋음을 확신하는 마음의 눈이 있습니다. 이 세 개의 눈은 본래 분리되어야 하나, 많은 경우 속으로 보는 눈이 육체의 눈을 따라가며 불행을 초래합니다. 의식의 눈과 마음의 눈은 육체의 눈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심판, 구원의 기회를 말살함
예수님께서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다"고 하신 말씀은 죄값을 묻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로 열린 구원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서 그 기회를 거두어들이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지옥행 사형수들에게 주어졌던 구원의 기회를 말살하는 심판입니다.
보는 자와 보지 못하는 자, 영적 시력의 기준
예수님께서 구분하시는 '보는 자'와 '보지 못하는 자'는 육체의 시력이 아닌, 의식의 눈과 마음의 눈으로 무엇을 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육체의 시각장애는 영원한 멸망과 무관하지만, 영원한 생사를 가르는 것은 속으로 보는 영적 시력입니다. 의식의 눈과 마음의 눈으로 반드시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본래 용도, 하나님을 향한 시선
의식의 눈은 하나님의 있음과 천국의 있음을, 마음의 눈은 하나님의 좋음과 천국의 좋음을 보기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 이후 이 본래 용도를 지키지 못하고 육체의 눈이 보는 세상을 따라갑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대신한 상태는 하나님과 동등한 신격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하의 자세, 하나님을 의식하라
임금님에게 신하가 임금님을 의식해야 하듯, 참새 한 마리의 떨어짐까지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앞에 우리의 의식은 오직 하나님의 있음을 느끼기 위해, 마음은 하나님의 좋음을 확신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뭉치면 죽고, 나뉘면 산다: 십자가 생활화
육체의 눈으로 배우자를 보면서도 의식의 눈은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의식의 눈이 육체의 눈을 따라 배우자를 향하면 하나님에 대해 눈이 먼 것이며, 배우자에게 기대를 품는 것은 하나님의 좋음에 대해 마음의 눈이 먼 것입니다. 세 개의 눈이 뭉쳐 다니면 수준이 낮아지지만, 십자가를 통해 봄의 방향이 역전되어야 합니다.
눈먼 상태, 십자가로 역전시키라
아담과 하와는 타락 이전 하나님만을 보았으나, 선악과 이후 세상에 대해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에 대해 눈이 멀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세상에 대해 눈이 밝고 하나님에 대해 눈이 먼 상태입니다. 이러한 눈먼 자들을 눈뜨게 하기 위해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천국을 향한 시선, 맹인이 되라
하나님의 있음과 좋음이 삶에 적용되지 않고 잊히는 것을 답답하게 여길 때, 우리는 비로소 천국을 향해 눈을 뜨게 됩니다. 천국에 대해 눈을 뜨고 세상에 대해 맹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의식의 눈과 마음의 눈은 예수님을 따라 아버지께로 가게 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의식의 눈과 마음의 눈이 육체의 눈을 따라가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 ❓예수님의 '심판'은 죄값을 묻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 왜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하는가?
- ❓타락 이후 인간의 '본래 용도'는 어떻게 왜곡되었는가?
- ❓십자가 생활화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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